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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이어진 관음과 마리아

박동미 기자
박동미 기자
  • 입력 2024-10-08 09:20
  • 수정 2024-10-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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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 중인 ‘관음과 마리아 - 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관장을 지내고 현재 성보문화유산연구원장인 송천 스님이 그린 것으로, 관음과 마리아가 품고 있는 ‘자비와 사랑’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 문호남 기자, 송천 스님 제공



■ 부산비엔날레 출품한 송천스님

국내 대표 불화전문가로 명성
불교색채로 천주교 그려 ‘파격’

“내게 두 존재는 동일한 ‘진리’
비엔날레가 창작욕 부활시켜”


지난 8월 개막해 뜨거운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부산비엔날레. 전 세계 다양한 작가들과 최신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대예술’을 보여주는 현장에서, 낯익으면서도 아주 낯선 그림 두 점이 걸려 있다. 이것은 괘불(야외 법회 등에 쓰인 거대한 불화)일까, 아니면 가톨릭의 성화일까. 그리고 누가 그렸을까. 부산현대미술관에 걸린 높이 8m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 앞에 서면, 그렇게 한참을 머물게 된다.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를 각각, 또 나란히 그린 송천 스님의 ‘관음과 마리아 - 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이다.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는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경외심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표방하는 교리와 사상은 다를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고귀한 삶에 이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같기에, 함께 그렸습니다.”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그리고 최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만나 인터뷰한 송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즉, 스님에게 두 존재는 보편적 의미의 ‘진리’로서 동일하다.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해 주는 구원자 또는 불변의 법칙”이다. 그래서일까. 네 개의 눈동자가 자꾸 따라붙는 것 같다. 늘 곁에서 지켜봐 주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진리의 뜻이, 표현방식이 종종 왜곡되는 것 같아요. 그 본연과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죠. 또 진리는 순리의 다른 말이기도 해요. 이치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모순과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철학도 담고 있습니다.”

photo 송천 스님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1호였고, 지난해까지 이 박물관 관장으로 일한 송천 스님은 국내 손꼽히는 불교미술 전문가다. 어린 시절 빼어난 그림 솜씨로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화가를 꿈꾸며 미대에 진학했다가 불교미술에 빠져 출가하게 됐다. 이후 종종 스님들의 진영(초상화)을 그리거나 탱화를 모사하거나 했지만, 수행에 매진하면서는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창작의 열망과는 다르지만, 전공을 살려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었거든요.” 바로 불화 장인이자 스승인 석정 스님, 범화 스님 등이 주도했던 조선 후기 불화 집대성에 참여했던 것이다. 20대 후반부터 스님은 20년 가까이 전국 500여 사찰을 돌며, 산재한 한국 불화를 조사·연구했다. 연구팀의 젊은 스님이었던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진을 찍어야 했다. “불화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고, 각 절에서 내어준 시간도 별로 없어서 신속하게 해야 했죠. 떨어지면 크게 다칠 텐데, 그땐 겁도 없이 열정이 넘쳤어요. 성취감이 컸고, 역마살이 있는 건지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고요. 하하.” 그 땀과 눈물은 2007년 40권으로 완간된 ‘한국의 불화’(성보문화재연구원)에 고스란히 담겼다.

스님이 비엔날레 주요 작가로 선정되면서 개막 전부터 이목을 끌었다. 베일을 벗은 작품은 짙은 종교적 색채에, 타 종교의 상징까지 과감하게 재해석했다. 이례적이면서 파격적이다. 스님은 “지난해 통도사를 찾은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들(베라 메이, 필립 필로트)이 내가 그린 대형 불화를 보고 출품을 제안했다”면서 “처음에 비엔날레 주제가 ‘해적 유토피아’라고 해서 생소했는데, 그들이 꿈꾼 평등과 불교의 상생, 도량이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고 했다. 구도의 삶을 살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예술가의 눈빛, 두 감독에게 스님은 ‘해적 유토피아’만큼 새롭고, 낯선 감각이었던 것. “한마디로 이번 비엔날레의 ‘해적’ 같은 존재가 있다면, 바로 접니다. 하하.”



스님의 삶은 본래 규칙적이고, 절제돼 있으며 속세보다 단조롭다. 다양한 자극과 영감이 필요한 예술가, 창작가의 삶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스님은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아트페어와 굵직한 전시가 펼쳐진 지난 9월, 서울 이곳저곳을 다니며 흠뻑 예술의 향기에 취했다고 고백했다. “비엔날레를 통해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창작욕이 부활했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길을 가볼까 합니다. 그냥 뭐 아주 조금 자유로워지려고 해요.” 다시 속세로 가려는 것 아니냐 했더니, “‘그림 그리는 스님’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실히 하려는 것뿐”이라며 “구체적인 예술 행보를 세우려는 것이지 파계는 절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 이거 아무래도 전생에 화승이었나 봅니다.(웃음)”

관음과 마리아의 ‘진리의 눈’을 볼 수 있는 부산비엔날레는 이달 20일까지 계속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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