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우크라戰이 드러낸 독재 민낯
푸틴 편 시진핑도 궁지에 몰려
러보다 위험한 중국 인식 팽배
한중수교 정신 짓밟은 싱 대사
독재 간파하고 싸운 처칠처럼
尹도 中체제 직시 새 전략 짜야
우크라이나가 이달 초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에 나서며 전쟁이 중대한 변곡점에 접어들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대대적 지원에 힘입어 우크라이나가 선전하면 올해 안에 휴전이나 종전 모멘텀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완전한 전쟁 종식의 길은 험난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략으로 자유 진영은 더 강화됐고, 독재 권위주의 진영은 위축됐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전쟁이 어떻게 종결되든 내분과 쇠락으로 치달을 게 분명하지만, 중국도 러시아에 버금가는 내상(內傷)을 입었다는 점이 전쟁이 낳은 의외의 효과다. 첫째, 지난해 2월 베이징(北京) 중·러 정상회담 때 푸틴과 ‘제한 없는 협력’을 선언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결과적으로 전범(戰犯) 지지자가 됐다. 푸틴이 성공했다면, 시 주석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우며 대만 침공을 앞당겼겠지만, 유엔총회가 러시아의 침략 전쟁 규탄 결의안을 거듭 채택하고 자유 진영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당분간 대만 정복 야심을 펴기 어렵게 됐다.
둘째, 이 전쟁으로 주요 7개국(G7)과 나토 결속력은 강화됐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도 확고해졌다. 시 주석이 2012년 집권 후 세계 패권 장악의 꿈을 구체화하면서 본격화한 미·중 신냉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중·러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대결로 확장됐다. 상대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유럽 국가들이 지난해 나토 마드리드 정상회의 때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고, 7월 나토정상회의에 또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개국(AP4)을 파트너로 초청한 배경이다.
셋째, 푸틴의 전횡은 독재국의 위험성을 드러내 줬다. 공산체제 붕괴 후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했던 러시아가 그 수준이라면 공산당 독재국 중국은 훨씬 심각할 것이라는 각성이 생긴 것이다. 푸틴은 그나마 언론을 의식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 아닌 것처럼 ‘특별군사작전’으로 부르도록 했지만, 관제 언론뿐인 중국에서 시 주석이 그런 고려를 할 리 없다. 푸틴은 러시아보다 위험한 나라가 중국임을 보여줬다.
싱하이밍(邢海明)의 ‘외교 도발’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했다. 그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앉혀 놓고 ‘중국에 베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처음으로 공산당 독재국의 본색을 드러낸 사건으로, 힘으로라도 한미동맹 강화를 막겠다는 협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엄중한 사태로 규정하고 중국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것은 정당하다. 싱 대사의 행위는 한중수교 때의 정경분리 원칙을 깬 것인 만큼, 이 사건을 대중 관계 재정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새 대중 전략은 중국 체제의 한계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위대성은 아돌프 히틀러의 위험성을 꿰뚫어보고 대응한 데 있다. 히틀러가 발호할 때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처칠은 “독재자와 타협해선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서 대결을 택했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작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에서 ‘처칠은 히틀러에 굴하지 않고 혼자라도 전쟁을 해나갈 것을 결단했고, 궁극적으로 승리로 이끌었다’고 썼다. ‘처칠은 정직함과 진지함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독재자와 싸워야 한다고 설득했다’고도 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 대중 저자세 외교의 결과는 ‘혼밥’과 사드 보복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대중 유화책을 주문한다. 싱 대사 파문 후에도 이 대표는 “명동에 중국 관광객은 와야 하지 않냐”고 했고, 이 와중에 방중한 의원들은 “한국이 선의의 조치를 해주길 원한다”는 중국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전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고려해 적당히 머리 숙이고 살자는 신판 체임벌린주의자들이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미국과 거리를 둔 채 중국에 밀착한다고 한국의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국제 규범과 시장 논리보다 시진핑 사상을 앞세우는 중국 공산당 체제와는 정상적 관계가 어렵다는 게 분명해진 만큼, 대중관계에 대한 새 접근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처칠 같은 결기로 중국 위험 탈피(derisking) 전략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