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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구회영’ 활동하다 ‘임권택 연출부’로 현장 첫 발

김구철 기자
김구철 기자
  • 입력 2019-08-3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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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감독은

김홍준(사진) 감독은 이제 감독보다는 다른 직함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인물이다. 오래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이고 다양한 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과 총감독직을 수행해 왔다.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올해 처음 열리는 강릉국제영화제 예술감독도 맡았다.

영화제에 관한 한 김 감독만큼 부침을 겪은 사람도 드물다. 여러 영화제에서 수석 프로그래머나 집행위원장 등을 맡았지만 2∼3년 후 직책에서 해촉되거나 영화제 자체가 없어지는 불운이 이어졌다. 영화제에 관한 한 그는 실패와 재기를 반복해 온 셈이다.



한국 영화계가 르네상스기를 누리던 1990년대 중반까지 김 감독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의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던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영화잡지 ‘로드쇼’에 쓴 글을 모아 펴낸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에이젠스테인에서 홍콩느와르까지)’은 영화광 시대였던 당시에 필독 영화 입문서로 분류됐었다. 이 책은 지금도 서점가 영화 섹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테디셀러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그는 늘 한국 영화계의 브레인으로 손꼽힌다. 영화 이론과 산업 환경, 타인이 만든 영화의 텍스트와 컨텍스트 구조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논리가 돋보인다. 그의 말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필력 역시 아직 현업 수준이다. 그러나 그가 필름 메이커로서도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 조감독으로 영화 현장에 발을 디딘 그는 지금까지 ‘장미빛 인생’과 ‘정글 스토리’ 등 상업영화로는 두 편의 작품만을 만들었다. 전자는 평단과 극장에서 주목을 받았으나 후자는 그렇지 못했다. ‘정글 스토리’ 이후 김 감독은 작가가 절필하듯 극영화 연출을 끊었다. 여전히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평론가나 영화 이론가로서 김 감독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할리우드 인물은 피터 보그다노비치다. 그 역시 뛰어난 평론가이자 영화 프로그래머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김 감독은 한국의 피터 보그다노비치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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