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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짝 떨어져서 보니 탁구가 더 잘보여요”

이동윤 기자
이동윤 기자
  • 입력 2007-06-23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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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는 세계탁구선수권 개인전, 단체전, 복식, 혼합복식을 모두 제패한 세계유일의 업적을 남겼다. 이같은 성적은 비슷한 시대, ‘탁구마녀’로 불렸던 덩야핑(중국)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1994년 은퇴, 지금은 지도자로 변신한 현정화(38·KRA감독)를 지난 15일 코리아오픈탁구대회가 열리고 있던 경기도 성남실내체육관에서 만났다.

현정화는 탁구의 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 현진호(83년 작고)씨는 부산상고에서 선수를 했다. 그러나 현정화는 아버지 때문에 탁구선수가 되진 않았다. “부산 수정초등학교 3학년 때 3학년 건물에 탁구실이 있어 자주 놀러가 공도 주워주곤 했어요. 그러다 3학년을 대상으로 선수를 모집한다기에 자원했죠.”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성적도 좋았다. 4학년 때 영남권 대회이긴 했지만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5학년 때 라이벌을 만난다. 대구출신 홍차옥이었다. “5학년 때 부산 화랑기대회 결승에서 만났는데 내가 져서 준우승, 6학년 때 이 대회 결승에서 만나 또 졌죠.”

대표팀과 실업팀(한국화장품)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동료였던 홍차옥은 ‘초기 현정화’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라이벌이었다. “사실 중학교까지 랭킹을 정하라면 차옥이가 1위, 내가 2위였을 거에요. 차옥이를 이기겠다는 라이벌 의식이 세계정상에 오르는데 도움이 됐어요. 차옥이는 별명이 ‘철녀(鐵女)’일 정도로 체력이 강했죠.

태릉선수촌에서 매주 토요일하는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에서 차옥이는 매번 1등을 했어요. 차옥이한테 지기 싫어 나도 죽을 둥 살 등 쫓아 가 나도 5, 6등은 했죠. 우리 때문에 하키와 핸드볼 대표들이 혼났죠. 기합 받고 외박도 못나가고.”

현정화는 중3때인 84년 2진급으로 영국주니어오픈에 출전했는데 4관왕에 오르며 여고1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당시 대표팀 에이스였던 양영자는 현정화가 대스타가 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87년 세계선수권에서 현정화와 복식 우승을 차지한 양영자는 서울올림픽에서도 복식 금메달을 딴다.

그 때만해도 현정화는 중국의 비장의 무기였던 스카이서브에 적응력이 부족한 완성되지 않은 선수였다. “86년 열린 제1회 탁구 최강전에서 영자 언니와 처음 격돌했어요. 내심 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죠. 언니는 몸도 아프고 해서….” 그러나 현정화는 단 45분 만에 3-0으로 완패했다. 양영자의 서브에 농락당한 것이다.

“자신 있었는데 지니까 열 좀 받데요. 이상하게 영자언니와는 게임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심지어 연습게임도요. 처음 한 판은 졌지만 3회 최강전(2회는 양영자 불참)에서 처음 이겼고 다음해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만나 이겨 내가 2승1패로 좀 앞섰죠. 영자언니의 서브를 받으며 적응력을 키웠죠. 영자언니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현정화가 주니어시절, 한국 여자탁구는 북한과의 주요 국제대회에서 만나 참패했었다. 에이스 양영자가 간염으로 힘을 못 쓰고 더구나 북한 에이스 이분희는 ‘양영자 킬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국에 강했다. 최원석 당시 탁구협회 회장은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며 현정화 등 주니어들을 국제대회에 출전시키며 육성했다. 현정화는 ‘이분희 킬러’로 조련된 셈이다.

“91세계선수권 남북단일팀 이후 분희 언니라고 불러요. 분희 언니와 첫 대결은 86아시안게임 직후 중국 선전(深?b)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도 잘 한다기에 많이 ‘쫄았는데’ 막상 부딪쳐보니 썩 잘 친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단체전에서는 졌고 개인전에선 이겼어요. 분희언니와는 단일팀 일원으로 한 달여 합숙하면서 친해졌어요. 동료인 (김)성희와 사귄다는 속내도 들어내고, 나도 그때 연애중이어서 서로 그런 이야기도 하고…. 단일팀 이후 한번도 못 만났는데 국제대회에서 만난 북한선수들이 근황을 전해줘요.

언니는 출산 후 조리를 잘 하지 못해 몸이 안 좋다고 하고, 아이도 뇌수막염에 걸렸다는데 약이 없어 머리가 자꾸 커진다네요. 작년 6·15행사때 북한에 갈 기회가 있어서 분희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북측에서 돈을 5억원이나 요구해 회사 쪽에서 거절했다고 하데요.”

현정화의 경기중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스웨덴 외테보리에서 열린 93년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4강전. “우승후보인 덩야핑이 싱가포르의 진준홍에게 져, 내심 금메달을 노렸죠. 더구나 4강 상대인 루마니아 바데스쿠는 별로 이름이 없던 선수였거든요.



근데 맞서 보니 완전 벽에 대고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데요. 세트스코어 1-1에서 3세트도 15-20으로 뒤졌어요.” 역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스코어. 다들 체념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에라! 길게 넣어보자 하고 롱 서브를 했는데 두 개나 그냥 먹어주데요. 그래서 나머지 서브도 모두 다 길게 줘 결국 듀스를 만들고 22-20으로 역전시키고 결국 3-2로 이겼죠.

결승상대인 첸징은 중국대표 출신이지만 당시는 대만국적이었죠. 나중에 들은 얘긴데 대만협회가 우승하면 보너스를 1억도 아닌 10억원을 내걸었데요. 나라도 전날 밤 한숨도 못 잘을 겁니다. 내가 처음 출전한 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개인전 16강에서 나를 탈락시킨 선수가 첸징이었는데, 참 아이러니하죠?”

그는 98년 동갑내기 탁구선수출신 김석만과 결혼했다. “10년 정도 연애했어요. 주위에서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고 특히 엄마가 심하게 반대했어요. 꼭 결혼하겠다는 감정은 아니었는데 주위의 반대가 심하자 일부러 더 만나고 결혼 결심도 했던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원래 그렇잖아요. 남편이 저 때문에 치인 감이 있어 미안해요. 아이는 1남1녀인데 장녀인 서연(6)은 유치원에 다니고 아들(원준)은 네살이에요. 직장 다닌다고 애들은 엄마가 봐 주세요. 엄마는 ‘손녀가 말 배울 때까지만 봐 주겠다’며 부산에서 올라오셨는데 두 살 터울로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까지 계세요. 칠순이 넘으셨는데 육십에 운전면허 따고 요즘엔 컴퓨터에 빠져 사세요.”

운동선수 출신은 2세들이 운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는데 현정화의 딸은 요즘 탁구를 배우고 있다. “올 5월부터 아빠가 운영하는 한남동 생활체육관에서 1주일에 두 번씩 하는데 소질이 있어요. 자신이 원하면 탁구선수 시킬래요. 하지만 운동 말고 다른 것 했으면 하는 게 속 마음이에요.”

현정화는 지도자가 된 지금이 더 탁구가 재미있다고 한다. “벤치에 앉다 보니 탁구가 많이 보여요. 선수 때보다 더 재미있어요. 사실 이렇게 오래해 감독까지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성격이 완벽주의자라 지지 않으려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원형 탈모증이 3번이나 왔어요. 감독을 하다보면 여자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있고 해서 사실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었고요.”

현정화는 이에리사 촌장에 이어 탁구선수 출신 박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과정을 마쳤고 논문만 쓰면 되는데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마무리를 못하고 있네요. 올해는 끝내야죠. 주제는 스포츠생리 쪽으로 잡고 있어요. 최종목표는 교수예요. 그리고 체육정책에 관심이 많아 그런 쪽으로도 활동하고 싶고 (최)윤희 언니처럼 스포츠센터를 하나 운영하고도 싶고…”

현정화는 은퇴를 앞두고 화장품 모델도 하고 수필집(여왕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다)도 출간했다. “김주동(2004년 작고) 한국화장품 전무께서 사전에 통보도 없이 회사로 오라고 하더니 카메라테스트를 하데요. ‘템테이션’이라는 신제품 론칭 모델를 했어요. 광고는 6개월간 방영됐는데 템테이션을 없어서 못 팔았다니 성공한 것 아니에요? 수필집도 선수생활을 하며 틈틈이 써왔던 것들을 김 전무께서 출간하라고 권해서 내게 됐죠.”

현정화는 독서광이자 메모광이다. “고교 때부터 합숙을 하면서 책을 많이 봤어요. 한 달에 10권정도.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대표선수시절 훈련일지와 일기를 매일 썼는데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요.”

성남 = dy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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