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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칩 심어 ‘텔레파시’… 생각만으로 컴퓨터 조작하는 시대 온다

구혁 기자
구혁 기자
  • 입력 2025-01-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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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론 머스크의 뇌공학 스타트업 ‘뉴럴링크’

동전 크기의 전자칩 뇌에 이식
뉴런의 전기신호 수집·분석해
뇌-컴퓨터 간 상호작용 가능케

출혈 최소화하고 이식 잘하려면
수술로봇, 바느질하듯 ‘칩’ 부착
칩이 보낸 뇌파 ‘N1’ SW로 분석

인간대상 두번째 임상시험 진행
시신경 잃은 환자 시력복구 도전


“인류는 인공지능(AI)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AI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뇌 위에 AI 층을 만들고 자연적인 두뇌와 인공두뇌를 연결하는 것뿐입니다.” 2017년 3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운영하던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라는 뇌공학 스타트업을 설립했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지 제시했다. ‘뉴럴 레이스’라는 액체 그물망 형태의 전극을 머릿속에 삽입해 뇌 활동을 정밀하게 읽어 들이고 지식과 정보를 뇌에 주입하는 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머스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일 이런 말을 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음을 샀을 테지만 수많은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머스크였기에 발언에 무게가 실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까운 미래에 영화 ‘매트릭스’가 실현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기술 분야 트렌드를 선도하는 잡지 중 하나인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의생명 분야 편집장 안토니오 레갈라도는 머스크 발표 한 달 후에 머스크의 계획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한다. 기사 제목부터 살벌하다. ‘일론 머스크가 뉴럴링크를 통해 인간들 사이의 텔레파시를 구현하겠다 약속했다. 절대로 믿지 마라’. 레갈라도는 “몇 년 안에 텔레파시가 가능할 것이라는 억만장자의 말은 왜 틀렸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분야 대가들을 인터뷰한 다음 “현재 이 분야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생각을 읽어내는 기술은 수십 년 이내에도 완성되기 어렵다. 머스크의 발언은 대중들로 하여금 이 기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게 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당시 BCI 분야 반응은 이처럼 냉랭했다. BCI란 뇌와 컴퓨터를 연결, 서로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말한다.

하지만 머스크는 어떤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7년 머스크 발표 이후 뉴럴링크 홈페이지에는 전기공학·재료공학·광학·컴퓨터공학·수의학·신경과학·생화학·의학 등 온갖 분야 전문가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고 이후 간헐적으로 연구 성과가 발표되고 있다.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비판 일색의 여론도 성과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다소 우호적으로 변했다.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전 세계 어떤 민간 혹은 국립 연구소도 BCI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뉴럴링크처럼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을 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며 “이 모든 것은 머스크의 원대한 비전과 막대한 자금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머스크 말대로 ‘먼 미래에 AI와 맞서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 인류의 운명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스타트업(뉴럴링크)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BCI 칩 뇌 이식 추진 = 2016년 설립된 뉴럴링크는 뇌 이식 가능 컴퓨터 칩(전자회로) 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뉴럴링크는 그 전 단계로 동물 머리에 BCI 칩을 넣는 기술을 테스트해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뉴럴링크 임상에서 죽은 동물만 1500마리에 달한다. 양·돼지·원숭이 등 죽은 동물 종류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PETA 등 동물보호단체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뉴럴링크는 2023년 5월 인체 임상시험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머스크는 2020년부터 인체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당초 약속보다 3년 늦어진 것이다.



뉴럴링크는 2023년 9월 첫 번째 인체 임상시험에 착수하면서 경추 척수 손상 또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일명 루게릭병)으로 인한 사지마비 환자를 모집했다. 2024년 1월 머스크는 소셜미디어 ‘X’를 통해 BCI 칩이 성공적으로 이식됐으며 환자가 수술에서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놀랜드 아르보’라는 이름의 이 환자는 다이빙 사고를 겪은 뒤 사지마비가 됐는데 BCI 칩 이식을 통해 생각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조작할 수 있었다고 머스크는 설명했다. 이후 뉴럴링크는 지난해 8월 두 번째 임상시험 지원자(가명 ‘알렉스’)에게 BCI 칩 이식을 마쳤다. 최근에는 미국에 이어 캐나다에서도 임상시험 승인을 받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9월 뉴럴링크가 시력 복구를 위해 개발 중인 이식장치인 ‘블라인드사이트’는 FDA로부터 혁신 기기로 지정됐다. 블라인드사이트는 양쪽 눈과 시각 신경을 잃은 환자들이 다시 앞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뉴럴링크는 설명했다.

◇인체 임상시험, 어떻게 진행되나 = 뉴럴링크의 첫 번째 목표는 사람들이 생각만으로 컴퓨터 마우스 커서나 키보드를 조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텔레파시’라고 이름 붙여진 인체 임상시험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선 BCI 칩, 수술용 로봇, 소프트웨어 등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잘 작동해야 한다. 우선 뇌에 이식되는 동전 크기의 BCI 칩은 ‘N1 임플란트’라고 명명됐다. N1 임플란트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64개의 실 모양 부품에 1024개 전극이 부착된 형태이며 뇌파를 읽는 역할이다. R1은 BCI 칩을 이식하는 데 사용되는 수술용 로봇을 말한다. 뉴럴링크에 따르면 R1은 15분 만에 BCI 칩을 뇌 표면에 부착하는 수술을 끝낼 수 있다. ‘N1 소프트웨어’는 BCI 칩이 보낸 뇌파를 분석한다.

임 교수는 뉴럴링크 BCI 칩 작동방식에 대해 ‘실과 바느질 기계’라고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가느다란 실에 전극을 코팅해 뇌 표면에 바느질하듯이 박아 넣는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뉴럴링크는 박음질을 위해 초정밀 R1 바느질 로봇을 개발한 것이다. 이 로봇은 뇌혈관을 피해 출혈을 최소화하면서도 자동으로 전극을 뇌 표면에 박음질하도록 설계돼 있다. 임상 기간은 총 6년이다. 지원자는 임상 초기 18개월간 뉴럴링크를 9회 방문해야 하며 이후 일주일에 2시간씩 연구 세션에 참여해야 한다.

또 남은 기간에는 20회 정도 연구소를 찾아야 한다. 뉴럴링크는 이제 막 인체 임상시험에 돌입했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새로운 의료 기기가 출시되려면 FDA 승인을 받아야 하고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전망했다.

구혁 기자 gu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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