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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덕후의 서재

상처 없는 사람은 없어… 나를 위해 남을 돕겠다

  • 입력 2024-09-2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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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후의 서재

“저는 역시 사람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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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며 이 말을 하는 한 남자가 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정신과 의사다. 극도의 인간 혐오증을 가진 그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

엄청난 눈으로 고립된 휴게소, 그곳에 사람들이 갇힌다. 정신병원 환자들과 의료진,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다. 고태호 작가의 웹툰 ‘펀치 드렁커드’는 폭설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직시하는 이야기다. 평범한 일상과 격리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며칠간의 사건들로 우리의 편견, 차별, 혐오 그리고 숨겨진 개인의 상처들이 밀도 있게 드러난다. 2023년 3월에 연재를 시작하여, 올해 4월에 연재가 끝났다.

처음에 시민들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정신병원 환자들을 2층에 격리하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정신병에 대한 편견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많은 대상이 이 자리에 대입된다. 성별, 외모, 인종, 세대, 학벌, 질환, 직업, 가족 형태, 경제력으로 구별하고 모욕적인 꼬리표를 붙여 적극적으로 비하하고 차별하는 현재 한국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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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해 보이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듯한 2층과 1층의 구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계는 흐려진다. 환자들을 차별하던 할머니의 치매 증상, 평범한 MZ 청소년처럼 보이던 민지의 자해 문제, 인생의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남들을 깔보지만 익명 커뮤니티에 자아를 의탁하고 있는 박영진, 나약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겉으로 더 폭력적인 깡패, SNS에서 가짜 관계에 중독된 젊은 여성, 딸을 잃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휴게소 노부부까지. 1층의 ‘정상인’들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 남을 돕겠습니다.”

인간을 혐오한다고 선언한 뒤에도 1, 2층 모두를 차별하지 않고 돕는 주인공 도민수의 말은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타인을 돕는 것이 곧 자신을 돕는 일이 된다는 연대의 휴머니즘이다.



‘펀치 드렁커드’는 재난물의 외피를 쓴 치유의 드라마다. 고드름이 물방울로 변해 사라지고, 금방 쌓이지만 한순간에 녹는 눈처럼 인간의 응어리도 치유될 수 있다. 모두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뿐일 것이다.

“역시 전 사람이 좋습니다.”

폭설 속 휴게소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쉽게 인류애를 잃게 되고 마는 우리의 마음도 녹여내길 기대한다.

전혜정 청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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