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봐주세요” 브라질의 헤베카 안드라지(가운데)가 5일 밤 프랑스 파리 베르시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마루운동 시상식에서 미국의 시몬 바일스(왼쪽)와 조던 차일즈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 올림픽 경기 최초 진기록
빈민가 출신 안드라지 우승에
美 선수 銀 바일스·銅 차일즈
시상식에서 무릎 꿇고 “축하”
바일스 “해야 할 일 했을뿐”
“진정한 올림픽 정신” 찬사
올림픽 경기 최초로 금·은·동메달 모두를 흑인이 달성하는 진기록이 탄생했다.
흑인 체조선수 헤베카 안드라지(25·브라질), 시몬 바일스(27), 조던 차일즈(23·이상 미국)는 5일 밤(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시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마루운동 결선에서 각각 금·은·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이들의 우정이 빚은 퍼포먼스에 호평이 쏟아졌다. 시상식에서 바일스와 차일즈는 금메달리스트 안드라지의 양옆에서 무릎을 꿇고 웃는 얼굴로 손을 활짝 뻗어 1등을 축하했다. ‘스포트라이트는 당신의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포즈였다. ‘금메달보다 값진 명장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는 호평이 잇달았다. 바일스는 취재진과 만나 “시상대에 모두 흑인 선수가 오르게 돼 너무 신났는데, 차일즈가 ‘우리 허리라도 숙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며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그녀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고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일스와 안드라지는 경쟁의식보다는 서로 건강한 자극을 주는 동료로 통한다고 여러 외신은 밝혔다. SNS에선 바일스가 차일즈의 동메달이 확정된 순간 본인의 은메달보다 더 기뻐하며 차일즈를 포옹하는 모습도 주목받았다.
이번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안드라지의 성공기 역시 화제다. 미혼모 가정의 8남매 중 한 명인 안드라지는 브라질 상파울루주 과룰루스 외곽에 판잣집이 밀집한 빈민가에서 자랐다. 안드라지가 체조를 시작한 건 이모 덕이었다. 안드라지의 이모는 체조 오디션이 열린 주에 우연히 체육관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심사에 조카를 데려갔다. 안드라지의 타고난 재능은 바로 눈에 띄었다. 하지만 당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던 안드라지의 어머니는 딸의 체육관 버스비를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래서 돈이 없는 날 안드라지는 체육관을 하루 4시간 동안 걸어서 오갔다. 이후에는 폐지를 판 돈으로 직접 조립한 자전거를 타고 체육관에 다니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3차례 큰 무릎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안드라지는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6개)을 획득한 선수로 올라섰다.
한편, 이날 오후 베르시 경기장에서 진행된 파리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평균대 결선의 과하게 조용했던 분위기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바일스는 이 경기에서 실수로 넘어져 5위에 머물렀다. 경기가 끝난 후 “분위기가 정말 이상하고 어색했고 우리 선수들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며 “소음이 있는 환경이 연습 때와 비슷해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선은 선수 1명씩 출전하기에 너무 조용할 경우 선수들의 부담감과 긴장감은 보통 가중된다. 관중의 선의가 되레 역효과로 작용한 셈이다.
이예린 기자 yr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