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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한국 CSI’

  • 입력 2008-04-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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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2000년 선보인 TV시리즈물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과학수사대’는 현재 시즌 8이 방영되고 있고 2002년 CSI 마이애미, 2004년 CSI 뉴욕이라는 스핀오프 시리즈까지 나올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으로 제작이 중단됐다가 지난달 다시 방영된 시즌8의 12번째 에피소드는 미국 내에서 2030만명이 시청해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한 평론가는 이런 CSI 시리즈의 인기몰이에 대해 “9·11테러 후 미국인은 불확실한 현실에서 뭔가 확실한 존재를 원하게 되었는데 가장 기초적인 사안을 철저히 조사해 가장 사실적이고 진실한 결론을 맺는 CSI시리즈야말로 미국이 원하던 것이었다”는 사회학적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10년간 CSI 요원으로 일한 미국 토슨대 인류학 교수 데이너 콜맨은 2007년 ‘CSI는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원제 Never suck a dead man’s hand)’는 저서에서 과학수사가 드라마처럼 멋지고 신나는 것만은 아니라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배심원들 사이에 증거가 없으면 유죄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CSI 신드롬’까지 생길 정도로 전 세계는 치밀한 증거수집과 분석으로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한 과학수사의 맛에 푹 빠져 있다.

한국에도 ‘CSI’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그것이다. 정부수립 때 설립된 치안국 감식과로 출발, 1955년 3월25일 독립 감정기관으로 출범했다. 유전자·지문감정·마약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선진국 수준의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 해결, 2006년 동남아 쓰나미 사태 때 한국인 희생자 신원확인 등으로 국과수 요원들의 자질은 세계적인 평판을 받았고, 2004년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이원태 소장은 문화일보와의 개소 53돌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CSI와 국과수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CSI는 법의관·법과학 전문가들이 말 그대로 범죄 현장을 조사하지만 행정안전부 산하 조직인 국과수 요원은 실험실 안에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경찰청과학수사센터(KPSI)가 현장을 담당하지만 KPSI 요원은 일반 경찰 중에서 지원을 받아 4주의 기본과정, 1~2주의 특기별 전문화 교육을 받고 배치되기 때문에 전문성의 깊이가 부족하고 DNA검사 등은 국과수에 의뢰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



현직 KPSI요원이 인터넷에 직접 올린 것으로 알려진 CSI와 한국경찰의 수사를 비교한 만화는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한적한 주택가에서 발견된 20대 여성의 변사체. CSI는 그렉(드라마 주인공)이 머리카락을 채취해 유전자분석을 시도한다. 다음날 결과가 나온다. 한국은 형사와 KPSI요원이 출동해 채취한 머리카락을 국과수에 넘긴다. 일거리가 넘치면 회신이 늦어지는 것은 다반사다. 담당형사가 독촉해도 할 수 없다’는 게 그 내용이다.

국과수 요원은 본원과 분원 포함해 284명이며 작년의 경우 22만4589건을 감정했다. 1인당 연간 790건,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 2건 이상 감정해야 하는 수치다. 이러니 경찰이 국과수에 의뢰한 증거는 결과통보에 15일 이상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아니면 검안서를 교부하지 못 한다’는 의료법 제18조 때문에 국과수 요원이 현장검안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과학수사의 분석능력과 첨단 기술이 미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지만 조직의 이원화와 요원의 절대 부족 등 환경 때문에 성과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국과수 업무의 95%를 차지하는 경찰로 이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른 부처에서는 위상 하락과 감정의 품질 저하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효율보다는 부처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법의학 전문가의 현장 참여는 ‘실용’을 기치로 한 이명박 정부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이동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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