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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보로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알렉산드르 2세 즉위 25주년
치적 기리기 위한 극무대 기획
음악가 12人에 공연음악 위촉

연주전 황제 암살로 무대 취소
獨 방문때 리스트 만나 곡 헌정

국민주의 음악이란 민족 고유의 선율이나 음악 어법을 제재로 하여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담아낸 음악을 일컫는 말로 흔히 ‘국민악파’ 음악이라고도 한다. 국민악파 음악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걸쳐 러시아, 북유럽, 보헤미아 등지에서 성행했는데 작곡가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전설적인 영웅들을 주제로 음악을 통해 자의식이 아닌 민족의식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러시아 출신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이다.

1880년 보로딘은 정부로부터 국가 행사의 일환으로 공연될 음악작품 한 편을 위촉받게 된다. 국가 행사는 다름 아닌 로마노프 왕조의 군주인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주년 기념식이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즉위 22년이 되던 해엔 튀르키예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농노제를 폐지하는 등의 개혁정책으로 러시아의 근대화에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부에선 황제의 즉위 25주년을 맞아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한 극 무대를 기획했고 그에 사용될 부수 음악을 당대의 러시아 작곡가 12인에게 위촉했는데 보로딘도 위촉 작곡가 중의 1인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1880년 초, 곡을 위촉받은 보로딘은 러시아의 아름다운 선율과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한 교향적 스케치를 단숨에 써내려갔고 4월 8일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하게 된다.

하나 재밌는 사실은 보로딘은 전업 작곡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보로딘은 음대 입학은커녕 정규적인 음악 교육조차 받아 본 적 없는 취미 음악가였다. 그의 본업은 화학자이자 교수, 내과의사로 ‘보로딘 반응’이라는 학술 용어까지 있을 정도로 연구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과학자였다. 또 그의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상에 누워 있어 대부분의 여가를 간병에 할애해야만 했기에 일요일이 되어서야 간신히 짬을 내 작곡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른바 ‘선데이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은 특별한 것이었기에 최소한의 시간일지언정 틈틈이 곡들을 썼고 교향시 성격의 자유로운 교향적 스케치인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를 완성해 낸 것이다.

보로딘은 악보에 아래와 같은 서술을 덧붙였다. ‘평화로운 러시아의 신비한 노래가 울려온다. 저 멀리 말과 낙타의 발굽 소리에 아시아의 가락 소리가 어울려 감돈다. 아시아의 상인 무리가 러시아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막의 길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상인 무리는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사라져 가고 아시아 상인들의 노래와 러시아인들의 노래가 한데 섞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자아낸다. 이윽고 아름다운 하모니는 메아리가 되어 조용히 초원의 하늘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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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러시아의 진취적인 기상과 함께 이웃 국가들과의 화합을 기리는 이 작품은 원래의 용도대로 공연되지는 못했다. 1881년 3월 13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불행히도 암살당하게 됐고 원래 계획됐던 치적을 칭송하기 위한 무대도 취소됐기 때문이다. 1881년 보로딘은 독일의 바이마르를 방문했는데 이때 평소 존경해오던 리스트를 만나게 되자 그 자리에서 이 작품을 헌정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보로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함께 ‘러시아 5인조’를 이끌었던 보로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880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지나는 상인 무리가 러시아 병사들의 호위 속에 지나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중앙아시아의 이국적 선율과 러시아의 민족적 선율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러시아의 민족적 선율이 흐르고 나면 뒤이어 현악기군이 상인들의 낙타와 말발굽 소리를 피치카토로 연주한다. 어느덧 러시아의 선율과 아시아풍의 선율은 한데 어우러지고 러시아의 선율로 조용히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