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내우외환(內憂外患). 안으로는 걱정거리, 바깥으로는 골칫거리. 위기 상황을 표현하는 사자성어인데 늘 붙어 다닌다. 그리고 순서도 내우가 먼저이다. 왜일까? 안으로 문제가 있으니까 외부의 충격에도 취약함을 시사한다. 지금도 그렇다. 트럼프발(發) 폭풍이 몰려오지만, 내부 문제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관세폭탄’ 하나만 봐도 트럼프노믹스의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보편 관세 10∼20%, 대(對)중국 관세 60%를 부과하면 전체 수출의 18%를 미국이 차지하는 한국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중국으로 가는 중간재 수출도 줄어들 것이다.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성장이 그만큼 둔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려 잡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 2.0%도 언감생심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율 인상이 2026년에나 시행될 것으로 전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의 관세폭탄은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에 무더기 서명하면서 당장 내년에 터질 것이다. 한국 경제는 KDI 전망보다 훨씬 심각한 경기 불황 국면에 접어들 공산이 크다.

하지만 물가 불안과 재정적자 증가로 확장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확장적인 거시경제정책을 경계했다. 우리 정부와 연례 협의를 마친 IMF 한국미션단은 지난 20일 통화정책의 점진적인 정상화와 더 적극적인 건전재정 기조를 주문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인식과 대처는 안이하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한 이후 자화자찬 일색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위기 상황이나 불안한 상황은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지금 한국은 폭풍이 몰려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저 폭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난파선에 가까워 보인다. 선원들은 두 패로 갈라져 한 패는 배야 어떻게 되든 선장을 끌어내릴 궁리나 하고, 다른 한 패는 태평한 선장만 쳐다보며 멍하게 앉아 있는 격이다.

이런 상황이니 승객들은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부자들은 해외로 대거 이주하고, 이른바 개미들은 한국 증시를 떠나 해외 증시에 투자한다. 고급 인력 유출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상 국내에 묶인 대기업은 적자 공장을 폐쇄하고 알짜배기 사업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충에 골몰한다. 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은 바로 광산의 카나리아, 난파선의 쥐와 같은 위기의 전조다.

27년 전 어제(21일)는 국가부도 위기 앞에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다. 원인은 정치 실패, 경제 실책이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야당이야 그렇다 치고, 정부·여당이라도 거야(巨野)의 딴지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는 핑계 대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 국회의 입법을 거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예컨대, 금융감독원은 대출 규제 같은 애매한 업무 영역에 관여하기보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식시장 침체의 근본 원인인 좀비기업 상장 폐지와 같은 일부터 우선해야 할 것이다. 현대의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이 생각난다. “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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