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경제부 부장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은 경제학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 중 하나다. 개인 사무실과 비서, 고급 관용차 등 물질적 처우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학자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가장 최신의, 가장 정확한 방대한 경제 데이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환경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두뇌들이 경제 전반의 현상과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보고서와 분석·대안들을 ‘백업(back up)’해 주는 것도 큰 혜택이다. 중앙은행은 최고의 경제 데이터와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한은 총재는 대통령·경제부총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경제 데이터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한은 총재는 최신의 경제 정보들을 테이블 위에 놓고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최근 통화정책뿐 아니라 각종 사회 현상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이 총재는 취임 당시부터 ‘사찰(寺刹)’처럼 조용한 한은이 바뀌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얘기해 왔다. 최고의 데이터를 보유한 한은이 사회 문제들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가 통화정책뿐 아니라 정치·사회·교육 등 다양한 현상들과 연결되는 만큼, 통화정책만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경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 이 총재의 생각인 듯하다.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이 총재의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입학 상한선 도입 주장이다. 이 총재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강남 등 부유한 지역 출신 학생들의 대학 상한선을 설정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에는 저출생 문제 해법의 하나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과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밝혀 노동계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응이 다양했다. ‘월권이다’ ‘중앙은행의 전문 분야도 아닌 교육·노동 문제를 거론, 현실성 없는 주장을 한다’는 등 반발도 많다. 국정감사에서는 ‘국회의원에 출마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이 총재의 문제 제기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60억 원에 매매됐다고 보도됐던 서울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2990세대) 단지는 단순 계산으로도 한 단지의 자산 규모가 무려 17조9000억 원이 넘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양극화는 경제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이 총재의 주장대로 서울의 부동산 문제는 교육을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속담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부의 세습이 교육의 세습으로 이어지는 시대다.

중앙은행 총재들의 이런 모습은 비단 이 총재뿐만이 아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구글·아마존·메타와 같은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문제점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티프 매클럼 캐나다중앙은행(BOC) 총재도 얼마 전 인공지능(AI) 산업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며 AI 관련 기업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중앙은행 총재는 그 독립성 때문에 정부나 정치권 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회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편견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총재의 더 다양하고 폭넓은 ‘월권’과 ‘시끄러운’ 한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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