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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글 쓰다 떠나간 딸… 그 꿈을 유고집으로 준비합니다

  • 입력 2023-11-1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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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나와 딸 다윤이 4년 전 함께 여행 갔을 때 프랑스 파리 세느강 유람선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익살스럽게 V자 포즈를 취한 다윤의 모습이 그립고 또 그립다.



■ 그립습니다 - 딸 박다윤 작가(1971∼2023)

하늘의 별이 된, 사랑하는 나의 딸! 박다윤! 딸이 떠난 지 어느덧 90여 일이 되었지만, 그의 빈자리는 채울 길이 없습니다.

다윤이는 1971년 12월에 작고 예쁜 아기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석 달이 안 돼 30대 초반이었던 다윤이 아빠가 전북도청 과장으로 승진해 발령이 나자, 집안 어른들께서 “복덩이가 태어나서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좋아들 하셨고, 그 후로는 다윤이를 항상 ‘복덩이’ ‘복딸’이라 부르며 귀여워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6세부터 피아노를 즐겨 배우고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아는 것이 많고 말도 잘해, 주위에서 ‘꼬마 박사’라 부르기도 했지요.

크면서 부모의 기대와 달리 문학 소녀라며 학업보다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더 강했고, 영어 공부하라고 비싼 워크맨을 사주면 밤늦도록 음악을 들으며 시와 동화를 쓴다고 해서 엄마 속을 꽤나 태웠습니다. 둘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심성이 맑고 고운, 미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항상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 깊은 딸이었습니다.

다윤이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꿋꿋이 걸어갔습니다. 그 열정에 내공이 쌓여서일까요? 2007년 계간 ‘아시아 문학’ 여름호에 등단과 함께 시 부분 신인상을, 2013년에 ‘노천명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첫 시집 ‘은빛소나타’를 출간했지요. 또 도서출판 다경(茶京)의 대표로서, 제약회사 사보팀의 편집국장으로서, 또 여러 문학회 임원으로 즐겁게 활동하는 걸 보며, 저도 예전과 달리 다윤이를 응원하게 됐고 그 재능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입도 별로 안 되는 책을 만든다고 늦은 밤까지 일하는 딸을 보며 건강을 해치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워 잔소리를 하기도 했지요.

바쁘게 지내던 다윤이가 지난해 12월 말쯤, 퇴근길에 발목을 다치는 사고와 함께 4기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정말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는 마음으로 매일 최선을 다하며 명의가 있다는 병원을 찾아다녔지요. 다윤이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느꼈는지 “엄마, 한때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엄마가 밉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많이 사랑해!”라며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던 사려 깊은 딸이었습니다.

다윤이는 병상에서도 기력이 남아 있는 마지막까지 시와 글을 쓰고 사보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사보를 만들 때는 앉기도 힘든 상태여서 양쪽 허리에 베개를 받쳐 세우고서 노트북 자판을 간신히 만지며 끝까지 해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상황에서도 책임을 다하려는 딸을 차마 말릴 수 없어 소리 없이 울어야 했습니다.

지난 8월 10일, 그날 아침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우리 딸, 좀 어때?”라고 하니까, 힘없이 뜬 눈가에 눈물이 붉게 맺히며 “엄마, 오늘은 힘들 것 같아…”라고 했던 그 말이. 그날 떠난다는 암시를 준 마지막 말이 됐습니다. 딸의 마지막 말과 끝까지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고개를 흔들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가슴이 메어 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다윤이가 큰 고통 없이 편안한 얼굴로 하느님 품에 안겼다는 것입니다. 또 많은 분이 아픈 다윤이를 찾아와 격려해 주시며 그의 고운 심성, 재능과 열정, 그동안의 성실했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을 때 엄마로서 참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딸의 꿈을 더 일찍 응원해 주지 못한 제 자신이 야속하기도 했지요.

치료를 받는 중에도 다윤이는 “내가 할 일이 오죽 많은데, 만들고 싶은 책도, 써야 할 시와 글도 산더미 같은데…”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안타까워했지요. 그 꿈을 더 펼치지 못하고 떠나간 딸을 위해, 그동안 딸이 써놓은 시와 글들을 모아 유고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의 딸, 박다윤 작가의 소망과 열정이 하늘의 별이 되어 빛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엄마 장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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