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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기록의 경기… 이닝별 숫자 보며 경기 내용 상상합니다”

정세영 기자
정세영 기자
  • 입력 2023-09-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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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장원철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실에서 아들이 준 시카고 컵스 티셔츠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프로야구 롯데 R&D팀 자문위원 장원철 교수

학창시절 주간야구 보며 빠져
지금은 ‘성덕’ 반열 올라 기뻐

친구들 “롯데 잘 부탁해” 말에
어깨가 괜스레 으쓱으쓱해져

타율 등 객관적 자료로 판단
통계학자들 야구 정말 좋아해

지금은 바야흐로 데이터 야구
더욱 흥미롭고 재미가 넘쳐요


장원철(54)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천문학과 유전학 등에서 쓰이는 순수 빅데이터의 분류 및 분석에서 국내 ‘일인자’로 통한다. 하지만 요즘은 야구계에서 ‘핫한 인물’로 더 주목받고 있다. 프로야구 롯데가 이달 초 장 교수를 R&D(연구·개발)팀 자문위원으로 위촉했기 때문. 최근 프로야구에선 ‘데이터 야구’가 대세다. 야구장에 있는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추적해 데이터화하고 투수가 던지는 공의 움직임도 수치화하고 있다. 과거 프로야구에선 선수들의 풍부한 경험과 코칭 스태프의 조언을 교과서로 삼았다면, 이제는 수치화된 데이터를 근거로 방향을 잡고 판단을 내리고 있다. 롯데의 R&D팀도 정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수단의 편성과 육성 등을 기획하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장 교수는 이달부터 향후 1년간 구단의 R&D팀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기존 분석 결과들을 피드백하고 발전 방향을 공유하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일본프로야구 등 다른 선진 리그의 성적과 국내 프로야구 성적 사이의 연동성에 관해 연구한다. 데이터 분석의 고도화에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KBO리그 구단 가운데 통계학 전공 현직 교수 인력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지난 12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만난 장 교수는 “학창시절에 야구전문 잡지였던 ‘주간 야구’를 구독하면서 야구단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자문위원으로서 조언자 역할이지만, 내가 ‘성덕’의 반열에 오른 것 같다. 꿈이 이뤄졌다”고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고향인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한다. 고향에서 롯데 야구는 거의 종교 수준이다. 친구들은 ‘네가 진짜 우리 롯데를 돕게 됐느냐. 정말 잘 부탁한다’는 말에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자신을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달착륙에 성공했던 해인 지난 1969년 태어났다”라고 소개했다. 그가 아폴로 11호 우주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렸을 적 꿈은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학창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학업에 매진했다.

공부밖에 모르던 모범생에게 야구는 유일한 ‘휴식처’가 됐다. 장 교수가 부산 동아고를 다니던 시절, 학교는 서대신3동 구덕구장 옆 언덕에 있었다. 구덕구장은 롯데가 사직구장 이전에 홈으로 쓰던 구장이다. 장 교수는 “동아고가 언덕 위에 있었는데, 하굣길에 봤던 야구장의 불 켜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야구장에서 함성이 들릴 때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공부에 지쳐있다가도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들으면 신나고 힘이 났다. 그만큼 야구는 학창시절의 나에게 큰 낙이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현 통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A&M대에서 통계학 석사, 카네기멜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지아대와 듀크대에서 조교수를 하다가 지난 2017년 모교로 돌아와 통계학과 교수와 학과장을 지냈다. 2016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연구상, 2018년 서울대 학술연구교육상 등을 수상했다.

장 교수는 “내가 대학에 들어갈 당시엔 명칭이 계산통계학과였다. 사실 전공을 결정할 때 계산통계학과와 화학과, 수학과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다. 숫자를 좋아하고, 수학도 좋아했기 때문”이라면서 “숫자를 가지고 응용하는 쪽을 하고 싶었고, 아버님께서도 ‘순수 과학보다는 그래도 숫자 응용이 열려 있는 분야로 네 진로를 결정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통계학을 전공하게 됐다. 지금은 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 교수는 “통계학의 장점은 다른 분야에 재미가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융합 데이터 과학이다. 통계로 야구는 물론 국사학, 컴퓨터 공학 등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다른 매력적인 분야와 접목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통계학이다. 물론 부지런해야 한다. 내가 좀 부지런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야구계에선 이미 ‘유명인’이다. 특히 야구광들 사이에선 한국야구학회 창립 멤버로 알려져 있다. 한국야구학회는 ‘바이오 뇌과학자’로 잘 알려진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제안으로 학자와 야구 전문가, 야구 관계자, 야구 팬이 한데 모여 2013년 1월 16일 출범했다.

한국야구학회의 모태가 된 ‘백인천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게 인연이 됐다. 백인천 프로젝트란 국내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 선수가 4할대의 타율을 달성한 이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4할대 타자가 없는 이유를 빅데이터 분석으로 밝혀낸 작업이다. 장 교수는 유전학·천문학 등에서 쓰이는 순수 빅데이터의 분류와 분석이 전문 분야였기에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였다. 장 교수는 “당시 2011년 겨울 미국에 있었는데 옛날 기록들을 한번 꼼꼼히 들여다봤다. 백인천의 기록을 모두 전산화해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50여 명이 뭉쳐 한 사람당 가공되지 않은 원천 데이터 10장 정도를 할당받아 분석했고, 데이터 검증도 병행했다. SNS로 뭉쳐 집단적으로 일했다. 정말 큰 성과였고, 일회성으로 끝내기가 아쉬워 야구학회를 조직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한국야구학회와의 인연도 숫자, 계산에 대한 흥미 덕분이었다. 장 교수는 “항상 야구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통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야구는 온통 숫자다. 미국에선 이미 야구 분석가라는 전문 직업도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숫자를 좋아했다. 타율과 평균자책점, 출루율, 장타율 등 선수의 객관적인 판단 지표들엔 계산이 들어간다”면서 “사실 통계학자들은 야구를 되게 좋아한다. 미국 통계학회에서 열리는 학술대회가 있는데, 이 일정엔 야구 경기 관람이 항상 잡혀 있다. 이뿐만 아니다. 야구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 발표하는 사례도 꽤 많다. 통계와 야구는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야구학회 초대 부회장을 거쳐 2대 회장을 지낸 장 교수는 “한국야구학회가 학자들만의 모임이 아니고, 다양한 관계자들이 모인 그룹”이라면서 “많은 야구팬이 각종 데이터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조금 더 분석적으로 야구를 즐기는 곳”이라고 전했다.

서울대에서 장 교수의 별명은 ‘팔방미인’이다. 부지런하고, 못하는 게 없어서다. 장 교수는 경기 시흥시에 있는 교직원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오전 7시 20분쯤 도착하는 통근 버스를 타면 되지만, 오전 6시에 출근한다. 장 교수는 “나이가 먹어서인지 새벽잠이 없다”고 웃은 뒤 “내가 강의 준비를 꼼꼼히 하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자랑스럽게 ‘제가 서울대 교육상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강의가 없는 날엔 학생 상담을 비롯해 행정 업무, 각종 회의에 참가하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명강의자로도 유명하다. 타고난 말솜씨, 그리고 재치있는 해설이 수강생들에게 인기다. 그래서 장 교수에겐 주례 부탁이 많이 들어 온다. 그러나 모두 거절하고 있다. 장 교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매번 다른 주례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주례 청탁이 오면, 대신 신랑·신부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준다. 작고한 랜디 포시 교수가 쓴 마지막 강의라는 책이다. 3∼6개월만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는 내용이다. 새 출발을 하는 신랑·신부에게 다양한 인생의 지혜를 배워서 앞으로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그 책을 선물한다”고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장 교수에게 야구의 매력을 꼽아달라고 했다. 장 교수는 “야구는…. 글쎄 이게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참 어렵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아마 기록의 경기, 숫자의 경기라는 점인 것 같다. 경기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하이라이트로 볼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숫자로 돼 있는 기록지들을 보면서 오늘의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상상해본다. 그게 참 매력적이다. 많은 야구팬도 KBO 앱을 통해 선수 기록을 체크하는 것으로 안다. 바야흐로 진정한 데이터 야구의 시대다. 그래서 더욱 흥미가 넘친다”고 웃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장원철(왼쪽에서 두 번째) 교수와 그의 가족이 지난 7월 1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찾아 더그아웃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장원철 교수 제공



“응원하는 팀 다르지만… 美 거주 식구들 한국 들어오면 온가족 야구 관람”

■ 가족의 각별한 야구사랑


장원철 교수는 ‘기러기 아빠’다. 그런데 다른 기러기 아빠들과는 사연이 사뭇 다르다. 동갑내기 아내인 이정선(54) 씨는 현재 미국 조지아대 영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큰아들 근호(22) 씨는 아버지가 박사 학위를 받은 카네기멜런대 통계학과 4학년이며, 둘째 근우(17) 군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장 교수가 조지아에 있을 때 아내 이 교수를 만났고, 두 아이를 얻었다. 그리고 2012년 장 교수가 홀로 귀국하면서 ‘기러기’ 생활이 시작됐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장 교수의 가족들은 아빠만큼이나 야구 사랑이 각별하다. 큰아들 근호 씨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과 시카고 컵스 R&D(연구·개발)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둘째 아들 근우 군은 형과 함께 ‘장 브러더스’라는 영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KBO리그 선수를 소개하는 블로그다.

컵스의 로고가 박힌 파란색 기념 티셔츠를 입은 장 교수는 “큰아들은 나와 같은 통계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야구 사랑 또한 나와 비슷하다. 대학 3학년 때 MLB 사무국 인턴, 그리고 컵스에서 인턴을 했다.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는 아들이 내게 준 옷”이라고 소개했다.

매년 방학이 되면 가족들이 한국을 찾는다. 오랜만에 만나 할 일이 많지만 절대 빼놓지 않고 하는 게 있다. 온 가족 야구장 관람이다.

장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KBO리그 왕 팬”이라면서 “정확히 몇 년도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연히 국내 올스타전을 찾았고 응원단석에 자리를 구했다. 당시 미국 응원문화와는 달리 응원단상에서 5개 구단 응원단장들이 쉼 없이 돌아가면서 구단 응원가를 틀었는데, 아내와 아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아내와 두 아들이 한국야구의 완전한 팬이 됐다”면서 “애들 방학에 맞춰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올스타전은 꼭 가려 한다. 올해도 사직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다녀왔다”고 웃었다.

야구는 함께 즐기지만 응원하는 팀은 저마다 다르다.

장 교수는 “나는 롯데 팬, 아내와 큰아들은 두산, 둘째는 키움을 좋아한다. 이제 내가 롯데에서 일하게 됐으니, 가족들을 롯데 팬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빠가 돕는 구단을 응원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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