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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023 추석특집

전쟁통엔 햅쌀, 팬데믹엔 모바일쿠폰… 선물을 보면 시대가 읽힌다

김호준 기자
김호준 기자
  • 입력 2023-09-26 09:04
  • 수정 2023-09-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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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시대별 명절선물 변천사

1950년대 포장된 선물세트 대신 허기 달래주는 식재료 나눠
1980년대 TV·밥솥 등 가전 선물 급부상… 백화점 구매 늘어
1990년대 햄·참치캔 등 실용성 챙기며 건강식품 인기도 올라
2000년대 와인·한우 등 ‘프리미엄’ 눈길… 젊은층은 가치소비


“조상을 위로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지만, 서울시에서는 시민들의 곤궁을 다소나마 위로하는 의미에서 추석 명절에 쌀을 선물할 것이라고 한다.” 6·25전쟁 중이었던 1952년 9월, 추석을 앞두고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중 일부다. 전쟁의 상흔으로 먹거리조차 변변하지 못한 당시 서울시는 추석을 맞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과 보리를 선물로 제공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명절 선물 변천사를 살펴보면 동시대의 사회경제적 모습이 잘 드러난다.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경제에 나라의 살림살이를 의존했던 1950년대에는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가 곧 선물이었다. 지금과 같은 선물 세트는 드물었고 햅쌀이나 설탕, 달걀, 밀가루 같은 식재료를 가까운 친지나 궁핍한 이웃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경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는 가공식품이 명절 선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추석을 앞두고 여러 신문에는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의 설탕, 샘표의 간장 등을 선물로 판매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으로 경제성장이 본격화한 1960년대 후반부터는 명절 선물의 고급화 현상이 나타난다. 은행 쿠폰, 백화점 상품권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는 “돈 있는 사람들의 씀씀이가 대단하다” “싸구려보다는 고급품의 생산이 눈에 띈다”는 여론의 우려도 자주 등장한다.

1970∼1980년대에는 지금도 고급 선물 세트에 속하는 갈비, 양주 등이 인기를 끈다. 당시 백화점 카탈로그를 살펴보면 명절 선물은 1960년대 100여 종에서 3000여 종으로 늘었다. 화장품, 넥타이, 스타킹, 속옷, 양산, 라디오 등 식생활과 무관한 선물도 명절에 주고받기 시작했다. 흑백 TV나 밥솥, 가스레인지 등 비교적 고가의 가전제품도 인기 명절 선물로 부상했다. 과도한 선물 열기로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자는 취지의 ‘안 주고 안 받기’ 캠페인이 열릴 정도였다. 전통시장보다는 백화점에서 명절 선물을 구매해 영세한 상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대형마트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햄과 참치 등 실용적인 중저가의 가공식품 선물 세트가 주류로 자리 잡는다. 또 고령화가 사회문제로 부각하기 시작하면서 인삼과 같은 건강식품도 선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경기 한파가 몰아치자 명절 선물에도 국산품 애용 열기가 반영된다. 이 시기 백화점들은 양주 같은 수입품 대신 민속주와 같은 국산품을 명절 선물로 대체하자는 마케팅 전략을 활발하게 펼치기도 했다.

2000년대부터는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명절 선물이 간소화하는 추세를 보인다. 4인 가족이 먹을 대용량 선물 대신 소포장 선물, 추석 간편상 등이 잘 팔렸다. 선물 세트 대신 ‘효도 성형’ ‘효도 보험’ 등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16년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명절 선물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법 시행 후 처음 맞는 추석에는 5만 원 이하로 맞춘 선물 세트들이 백화점 매대를 장식했고, 고가의 선물 세트를 주고받는 관행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명절 선물은 ‘비대면’이 대세로 떠올랐다. 발품을 팔아 좋은 명절 선물을 고르는 대신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손쉽게 쿠폰이나 선물을 주문해 택배로 전달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감염병을 막기 위한 손소독제, 마스크로 구성된 선물 세트도 반짝 인기를 얻었다.

젊은 세대에는 ‘가치소비’가 유통업계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포장을 간소화한 선물 세트와 친환경, 유기농 제품도 선호도가 높아졌다. 한 병에 1억 원이 넘는 와인을 비롯한 위스키, 백주 등 프리미엄 주류 선물 세트와 함께 골드바, 수입 자동차 등 이색 선물도 눈길을 끈다.

올해는 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 선물 금액 상한선이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라가면서 다시 고가 선물 세트가 잘 팔리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한우나 굴비 등 프리미엄 선물 세트 구색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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