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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정신 담긴 ‘법제’가 여물고 있다

  • 입력 2023-08-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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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규 법제처장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준비하며 올해 초에 세웠던 계획을 돌아보기를 제안한다. 계획대로 잘 되고 있다면 해왔던 대로 충실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보완해 올 한 해를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정부 업무보고에서 법제처는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이 강조됐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과 법치 등 국가의 비전과 가치가 모두 헌법에 투영돼 있고, 이러한 헌법 정신에 부합하도록 법령을 잘 만들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법제처는 헌법 정신을 최우선으로 두고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때로는 다른 정부 부처에 비해 법제처를 낯설어 하거나 그 주요 기능인 법령심사를 단순히 문구를 수정하는 정도로 좁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기회에 법령심사 과정에서 법제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기 쉽게 소개해 본다.

먼저, 법제처는 ‘문지기’이다. 법제처는 법령이 헌법과 헌법으로부터 유래되는 비례의 원칙, 평등의 원칙, 신뢰 보호의 원칙, 법률 유보 원칙 등을 거스르지 않도록 법령이 만들어지는 길목에서 깊이 있게 법령안을 심사한다. 최근에도 법률에 명확한 근거 없이 하위 법령에서 사전 신고 의무를 부여하려는 것에 법제처가 제동을 걸었다. 법률에서는 농업기계의 제조업자 및 수입업자가 일정한 농업용 트랙터 등을 ‘판매한 경우’에 신고하도록 규정하면서 신고에 관한 세부 사항을 하위 법령인 부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령에서 농업기계의 ‘판매 개시 10일 전’에도 신고하도록 개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법제처는 ‘아이디어 개발자’이다. 법제처는 법령이 체계에 맞춰 제때 시행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이 전부 개정돼 유기동물 등을 임시로 보호하기 위한 비영리 민간동물보호시설의 신고제도가 지난 4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대다수 시설이 열악하거나, 입지·건축물 등에 관한 법적 쟁점이 있어 신고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신고제도를 제때 시행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이 필요했고, 이에 법제처는 아이디어를 냈다. 법률의 위임에 따라 신고 대상 시설의 규모를 대통령령에서 정하면서 그에 관한 특례를 두어, 단계적으로 신고 대상을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법제처는 ‘조정자’이다. 법령 제·개정 과정에서 법리적 쟁점에 이견이 있는 경우 법제처는 법제 전문가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원활한 협의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5월 시행된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민간 소유자·관리단체가 문화재 관람료를 감면하는 경우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문화재 관람료 지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원금의 성격’과 ‘적용 법령’에 대해 관계 부처와 정책 대상자 간 이견이 풀리지 않아 시행이 연기될 우려가 있었다. 법제처는 지원금은 보조금이고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고 안내했다. 이를 토대로 문화재 관람료 감면과 그에 대한 지원이 원활히 시행되고 있다.

정경대원(正經大原), 바른길과 큰 원칙이라는 뜻이다. 국가와 사회를 구성·운영함에 있어 바른길과 큰 원칙은 바로 헌법이다. 다년간의 법제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로 구성된 법제처는 헌법 정신을 정경대원으로 삼아 오늘도 땀 흘리며 법령심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가을을 앞둔 지금, 법제처의 법령심사를 통해 헌법 정신이 구현된 법제가 잘 여물고 있다. 그 노력의 결실이 풍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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