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같은 재판부가 보이스피싱 수거책 A씨 ‘무죄’, B씨는 ‘유죄’ 선고
미필적 고의에 따라 유무죄 엇갈려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수거책에 대해 엇갈린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범행에 대한 인지 여부를 의미하는 ‘미필적 고의’(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것)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6단독(판사 김지영)은 최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여성 A(3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제안으로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받아 전달하기로 하고, 금융기관 직원 행세를 하는 등 전화사기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검사를 사칭한 조직원의 "통장이 범죄에 연루됐다"는 말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1500만 원을 받아 가로채는 등 지난해 5월 19일부터 일주일 동안 17명으로부터 모두 3억9900만 원을 받아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넘긴 현금 수거책 역할을 했다.

A씨는 공범에게서 이메일로 받은 가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명의 문서를 출력해 피해자에게 보여 준 혐의(공문서 위조·위조공문서 행사)도 받았다.

그러나 1심 법원은 A씨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으로 채용 절차가 진행된다고 해 조직원에게 신분증을 찍어 보냈고 세금과 4대 보험 가입 안내까지 받은 점, 피해자들에게 본명을 밝혔고 개인정보 유출 위험 때문에 대화 내용을 삭제하라는 조직원의 지시를 따른 것으로 보인 점 등을 토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이 수거한 돈을 입금하지 않고 매번 지시받은 장소로 이동해 전달하고, 공문서를 피시방에서 출력해 피해자들에게 건넨 점에 비춰보면 사기 범행에 가담했다는 인식을 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기 범행 공모나 공문서위조와 행사에 관한 고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또 "보이스피싱 범행 수법이나 기망의 내용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고도화되고 있다"며 "조직원들이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취업이 절실한 청년들에게 접근해 범행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아 사기를 인식하지 못한 채 이용되는 경우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와는 반대로, A씨처럼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한 B(63·여)씨에 대해서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같은 날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 재판도 A씨를 재판했던 재판부가 담당했다.

B씨는 2020년 11월 구직 광고를 통해 알게 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제안으로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하기로 한 뒤 그해 11월 초부터 중순까지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조직에 속은 피해자 6명으로부터 9200만 원을 받아 공범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국세 체납 징수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 범행을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체납된 세금은 공무원이 징수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조직원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고, 받은 돈을 세무서나 행정기관 등에 입금하지 않고 조직원들에게 100만 원씩 나눠 입금한 점, 가명을 말하려고 한 점 등으로 볼 때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조직적·계획적으로 이뤄지는 보이스피싱 범죄 특성상 그 확산을 막기 위해 현금 수거책을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B씨도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임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