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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파워인터뷰

강수진 “나는 ‘성장 중독’… 실력 느는 단원들 보면서 무한한 행복 느껴”

최현미 기자
최현미 기자
  • 입력 2023-06-07 09:08
  • 수정 2023-06-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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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강수진 단장은 주역, 군무, 음악, 안무, 극장 관리, 홍보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좋은 공연이 된다며 발레단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 오랜 믿음이라고 했다.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문호남 기자



■ 파워인터뷰 - 첫 4연임…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

발레리나 접고 ‘인생 2막’ 9년
주변에서 “crazy” 라고 했지만
하루하루 100% 살아 미련없어

후배들 무대 설 때마다 성취감
간이라도 다 떼주고 싶은 마음

5월 스위스·독일 공연 전석 기립
톱클래스 클래식 발레 큰 호응

발레단 실력 전세계서 수준급
해외공연·게스트 러브콜 세례


인터뷰 =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아름다움과 단단함. 누군가를 규정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을 설명한다면 이 두 단어를 고르고 싶다. 이는 그의 오랜 별명인 ‘강철나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중력을 거슬러 한없이 부드럽게 솟아오르지만 이를 위해 온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강철처럼 단련했던 아름다운 단단함, 단단한 아름다움.

세계 최고 발레리나에서 국립발레단장으로 역할을 바꾼 지 9년. 발레리나로서의 경험과 인맥을 쏟아부어 국립발레단을 톱 클래스로 성장시킨 그는 최근 국립예술단체장 최초로 4연임 단장이 됐다. 무대 위 강철나비는 무대 뒤에서도 여전하다. 그는 스스로 ‘성장의 기쁨 중독’이라고 했다. 발레리나 시절, 조금이라도 실력이 느는 맛에 중독됐다면 지금은 단원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에 중독됐다. 연습, 피땀, 눈물, 몰입과 열정의 결과인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중독이다.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행복해하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는 강 단장을 지난 1일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발레단 단장실에서 만났다.

―국립발레단장으로 일한 지 벌써 9년이다. 생각한 목표는 이뤘나.

“클래식 발레, 드라마 발레, 네오 클래식, 현대 발레까지 어떤 장르든 수준 높은 무대를 만드는 세계적 발레단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돌아보면 목표했던 것들은 이뤘다. 좋은 것,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했다. 혼자 한 것이 아니다. 함께 피와 땀으로 만든 결과이다. 하지만 배우는 것에 끝이 없듯 발전에도 끝이 없다. 유지는 더 어렵다. 열심히 노력해 끌어올려 놓아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내려갈 수 있다. 그래서 ‘꾸준히’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2014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종신 단원 같은 많은 혜택을 버리고 왔던 그때를 돌아보면.

“그때 결정을 안 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 테다. 가끔 한국에 와서 공연하고 후배들 지도하고 그렇게 살 수도 있었다. 서른 즈음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한국에서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이 항상 머리 뒤쪽에 있었지만 발레리나가 다른 역할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건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땐 굉장히 단순하게 결정했다. 예스 아니면 노, 받아들이냐 아니냐. 결정의 핵심은 남편이었다. 남편이 ‘당신이 원하면 기꺼이 간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예스라고 했다. 나보다 주변에서 더 걱정했다. 종신단원을 포기했을 때 내 결정에 ‘very crazy’라고 했다.”

―30년간 발레리나로 무대에 섰다. 무대가 아쉽고 그립지 않나.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면 직성이 안 풀리는 성격이다. 발레리나로 하루하루 100% 살았기에 아쉬움이나 미련은 조금도 없다.”

―예술단장으로서의 즐거움은.

“삶이 그렇듯 그동안 발레단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었지만 현역이 아닌 단장으로서 단원과 같이 작업하며 느끼는 보람과 행복은 어마어마하다. 오래전 무대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다. 매일 작업하고 그 결과가 공연이 되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행복하다.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매일 하루하루 조금씩 실력이 느는 맛인 ‘성장의 기쁨’에 ‘중독’돼 연습했다고 했는데, 단원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중독’인가.

“중독이다. 진짜 사랑과 애정이 없으면 못 한다. 단원들이 성장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진짜 내가 간을 다 떼준다고 말한다.”

단원들의 개성을 끄집어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지도하려 한다는 강 단장은 웬만하면 발레단 클래스에 직접 참가, 고칠 부분을 그 자리에서 바로 교정해준다고 한다.

“사람은 많이 울고 웃으며 표현해야… 그래서 예술이 필요한 것”

점점 세상에서 사라지는 감정
아이들이 숨쉴 공간 마련해야

슬럼프에도 항상 연습실 찾아
‘살아남아야 한다’스스로 되뇌어

나는 ‘완성형 예술가’ 아니야
부상으로 1년 쉴 때도 연습만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60대 이후 할일들이 더 기대돼
내가 받은 사랑 전하는 게 행복


photo이미지 크게보기 강수진 단장은 머릿속에 생각이 많을 때 스트레스도 많아진다며 그럴 땐 스튜디오에서 발레에 집중하며 잡념들을 떨쳐 버린다고 했다. 문호남 기자



―초기에 면담할 때 에두르지 않고 직선적으로 말해 단원들이 울고 갔다고 들었다. 여전히 그런가.

“요즘에도 많이 운다. 한국말이 많이 늘었지만 나는 느끼는 대로 말한다. 아프지만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성장은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된다. 나 역시 발레단 시절, 감독님의 지적에 많이 아팠지만 그만큼 성장했다. 나중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과 애정이 없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제 단원들도 잘 안다.”

그는 단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똑같이 느낄 수는 없지만 자신도 군무·솔리스트·수석 무용수를 거치며 그 순간순간들을 살았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안다고 했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항상 말한다. “말씀하세요. 힘든 거 이야기하세요”라고.

―발레에서 중요한 재능은 무엇인가. 단원들의 장점, 가능성은 어떻게 찾아내나.

“예술은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고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노력도 재능이다. 재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타고난 신체 조건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 연구하는 것,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흡수력, 상상력, 끈기, 인내, 연습까지도 모두 재능이다. 이것들을 하루 이틀하고 그만두면 안 된다. 힘들어도 꾸준히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중에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을 끌어내 장점을 살리고 부족한 것은 보완하게 도와주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다. 무엇보다 푹 빠져 즐기는 느낌을 알게 해줘야 한다. 우리가 왜 사나. 이런 느낌, 이런 행복감 때문 아닌가.”

―즐긴다는 것은.

“기준점이 자신이어야 한다. 좋아서 즐거워서 해야 한다. 발레를 사랑하는 거다.”

―모두가 성공할 수 없고, 때론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데.

“물론 그렇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했든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라면 노력한 만큼 자기 삶에 도움이 된다.”

기쁨과 함께 단장으로서 어려운 점에 대해 묻자 그는 “책임자 자리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나. 어떤 문제들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면서도 ‘지나친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악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야기였다. “따끔한 조언은 필요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너무 아파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그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그 한계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9년 동안 발레단의 무용수 기량을 높였고, 자체 레퍼토리도 확보했고 안무가 육성프로그램도 성과를 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 한 가지, 한쪽에만 몰릴 수 없다. 이전에는 영국 로열발레단, 볼쇼이발레단, 파리오페라발레단 각각의 스타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없다. 큰 발레단은 어떤 작품이든 조화롭게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한다. 국립발레단은 전 세계에서 톱 클래스다.”

이어 강 단장은 지난 5월 스위스와 독일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공연에서 발레단은 송정빈 안무의 ‘해적’을 선보여 전석 기립이라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보기 드문 톱 클래스의 클래식 발레 공연이었다. 관객들이 한국에서보다 더 좋아해 감동 받았다”는 그는 특히 군무를 자랑했다.

―칼군무였나.

“아무리 솔리스트가 잘해도 군무가 안 받쳐주면 좋은 공연이 못 된다. 발레는 디시플린(discipline·규율)이 있어야 하고 서로서로 호흡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원래 이기주의적인데 점점 더 개인주의가 되면서 군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 발레단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힌다. 굉장히 뛰어나다.”

이 같은 발레단의 성장에 따라 국제적으로 공연, 게스트 초청, 안무가 러브콜이 많아졌지만 시간과 무용수 부족으로 다 응할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또 해외 무용단은 보통 공연 일정을 2∼3년 전에 잡고 연습하는 데 비해 한국은 1년 단위이고, 전용극장도 없어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쉽다는 것, 부족하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아쉽기 때문에 더 하려 한다”는 것이다. 역시 강 단장다운 말이다.

―‘강철 나비’ ‘강철 멘털’로 불리지만 요즘 어깨가 무겁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워낙 책임감이 강하고 스스로 몰아붙이고 괴롭히는 스타일이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지난해엔 좀 많이 지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걸 받아들였고 발레단의 성장을 위해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지금은 나를 컨트롤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어떤 방법인가.

“스튜디오(연습실)다. 스튜디오에서 단원들과 함께 연습하고 지켜보면서 에너지를 받는다. 발레리나 시절에도 그랬다. 항상 스튜디오에서 에너지를 받는다. 스튜디오에 가면 발레의 매직이 이뤄진다. 그 순간만큼 싫든 좋든 온갖 잡념을 버리고 몰입해야 한다. 딴생각을 하는 순간 다친다. 다치지 않으려면 집중해 스텝을 기억해야 한다.”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결국 연습으로 극복한 것으로 유명한데.

“슬럼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다.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것 같은데 더 떨어진다. 멍하고 몸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스타일이다. 어느 순간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정한다. 결정까지 힘들고 결정한 뒤에도 쉽지는 않다. 극복이 하루 만에 되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연습밖에 없다. 울면서 연습했다.”

슬럼프에 빠지면 거울 앞에서 “수진, wake up. 정신 차려”라며 생각이 나쁜 쪽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는 그는 “삶의 무대에서 몰아치는 파도와 만나면 누구나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파도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그의 철학을 전했다.

―발레 학교 시절, 한 시즌에 토슈즈 몇백 켤레를 닳게 한 연습 벌레였다. 타고난 성격인가.

“어렸을 때부터 노력형이었다. 한번 하려는 일은 누가 뭐래도 악착같이 해냈다. 발레리나로 100% 태어나지 않았고 처음부터 빛난 것도 아니었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요즘엔 사람들이 연습, 노력, 이런 것들을 힘들어한다는데 천 년 뒤에도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만약 있다면 복권 정도일까. 하지만 복권도 당첨된 후에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강 단장께 연습이란.

“연습은 사는 것. 걱정할 시간에 ‘플리에’ 하나라도 더 하자 그렇게 생각한다.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

―늘 하루를 100%로 산다고 말해왔다. 단장으로서도 그렇나.

“그렇다. 나만 위한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래야 한다. 매일 매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이 순간에 목숨을 걸고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100%로 보내야 한다. 오늘 이 인터뷰도 그 시작과 끝이 모두 모인 결과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가장 듣고 싶은 찬사라면 “보잘것 없는 하루하루를 반복해 대단한 하루하루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했다.

―발레리나로 또 지도자로 성공했다.

“너무 감사하다. 그 순간들이 힘들지만 좋았다. 나에겐 쉬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하다 보니 지금을 맞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입으로 ‘성공’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이건 무거운 단어이다. 그저 피땀 흘린 노력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을 뿐이다. 열심히 살았다.”

―강 단장께 발레란.

“발레에서 인생을 배웠고, 인생을 통해 발레를 알았다. 테크닉적인 발전뿐 아니라 마음가짐, 인간관계, 인격을 배웠다. 발레 그 안에 묶여 있지 않았다. 상대 무용수를,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려 했다.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많이 울고 많이 웃고 많이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표현을 잘 못 한다. 갈수록 세상에서 이런 감정이 없어져 간다. 그래서 예술이 필요하다. 음악을 들으면 울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강 단장은 예술 교육이 중요하다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가 최근 예술공공 정책에 관심을 두는 이유이다.

―발레단 홈페이지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지치고 숨이 차지만 당신의 시야는 더 넓어진다”고 했다. 나이 드는 것은 어떤가.

“나이 드는 것이 좋다. 40대에 노안이 왔고, 50대에 오십견이 왔다. 모든 것이 순서대로 왔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 하지만 60이 되고 싶다. 앞으로 할 일들이 기대된다. 앞으로 가고 싶다.”

―한 인터뷰에서 유니세프 활동을 한 오드리 헵번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했는데.

“줄 때가 행복하다. 현역 때엔 좋은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좋았고, 지금은 발레단을 키우고 단원들에게 도움이 주는 것이 좋다. 언젠가 인생 3막을 산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 계기가 오면 예스라고 할 것이다. 돌아보면 선생님, 남편, 가족, 관객들, 동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랑을 많이 받아야 사랑을 줄 수 있다. 누군가 사랑을 주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준다. 그게 삶이다.”


발레계 아카데미상·독일 훈장 받고… 50세에 마지막 공연

■ 강수진은


photo이미지 크게보기 강수진 단장의 은퇴 공연 모습.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제공



1967년에 태어나 9세 때부터 한국무용을 배우다 예중 1학년 때 뒤늦게 발레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발레 전공자가 부족해 발레로 전향할 학생을 찾을 때 손을 들어 시작했지만 발레가 너무 좋아 잘 때도 토슈즈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평생 스승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교장과의 만남이었다. 학교를 방문한 베소브라소바 선생이 강수진에게 유학을 권했고, 1982년 혼자 모나코 유학길에 오른다.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연습만이 출구이자 친구였다는 그는 1985년 발레영재 등용문인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당시 최연소 나이로 입단했다. 하지만 최연소였던 만큼 막내 시절이 길었다. 군무 생활 7년. 숱한 슬럼프가 있었지만 이 역시 연습으로 이겨내고 1993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첫 주역을, 그다음해엔 솔리스트로 승격됐다. 그는 작품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과 발레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과 이야기를 싣는 그만의 개성으로 사랑받았다. 작은 것 하나도 지나치지 않는 깐깐한 성격 때문에 연습실에 들어서면 한숨부터 쉬는 파트너도 있었지만 발레리노들은 그와의 연습을 두려워하면서도 같이 공연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실력이 늘고 늘 멋진 공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상을 수상했고, 독일 정부가 최고 장인예술가에게 부여하는 ‘캄머탠저린(궁정 무용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정부의 공로 훈장을 받았다. 현역 발레리나로 상상하기 힘든 50세가 되던 해인 2016년 7월 22일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인 ‘오네긴’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은퇴 전인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오늘의 경쟁자는 어제의 나… 작은 발전이 모여 결정적 차이 만들어

■ 강수진 단장의 ‘삶의 키워드’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세계적 발레리나 시절의 모습. 인플루엔셜 제공



강수진 단장에게 100% 꽉 찬 완성이란 없다. 삶에서도 예술에서도 어제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뿐이다. “나의 한계 속에서, 내가 오늘 하고자 했던 일에서 끝을 보려고 했다”는 강 단장의 삶의 키워드들을 그의 말로 정리했다. 그의 에세이 ‘한 걸음 걸어도 나답게’(인플루엔셜)에서 발췌했다.

◇Today is a new day =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그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해내면 된다. 대단한 성취를 해내지 못했더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살면, 그 하루에 만족할 수 있으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진화할 수 있다. 그 사소한 ‘조금 더’가 모여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몰입 = “모든 예술에 필요한 독창성과 직관력은 완전한 몰입 상태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깨어 있는 순간에 오로지 그것만 생각할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나는 하루 중 어느 한순간도 발레를 하고 있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대화할 때, 걸을 때도 내가 느낀 모든 감정을 내 발레에 쏟아부었다.”

◇나와의 경쟁 = “긴 무명 시절을 버티고 뒤늦게 발레단의 간판스타가 돼 장수한 비결 중 하나는 남과 경쟁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의 경쟁자는 언제나 어제의 강수진이었다. 연습실에 들어서면 나는 어제 강수진이 연습한 것보다 강도 높은 연습을 1분이라도 더하기로 마음먹는다. 무대에 오르면 어제 강수진이 보여준 공연보다 더 감동적인 공연을 보여줄 것을 다짐한다. 어제의 강수진보다 더 가슴 벅차고 열정적인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자신감 = “자신감, 자만심, 자부심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자신감을 갖고 노력해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자칫 자만심을 가지면 그때부터는 내리막길이다. 후배들이 자만심을 보이면 따끔하게 혼내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자만심이다.”

◇예의와 존경 = “관객이 없으면 발레도 없기에 무용수는 관객에게 진심을 보여야 한다. 그 속에서 무용수도 성숙하고 발전해 나간다. 그렇기에 스텝 하나를 잘 밟는 것 못지않게 자신을 공부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곧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줄 아는 능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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