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입구에 권오상 작가의 작품 ‘Error’가 자리했다.

5인 그룹전 ‘낭만적 아이러니’
내달 18일까지 재개관전 진행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소격동에서 원서동으로 이전해 지난 1일 재개관했다. 거리상으로 크게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옮겼는데 관심이 가는 까닭은 창덕궁과 현대건설 사옥 사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사이엔 한국 대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옛 ‘공간(空間)’ 사옥을 전시관으로 탈바꿈시킨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있다. 그러니까 아라리오갤러리가 아라리오뮤지엄 곁에 쌍둥이처럼 들어선 것이다.

아라리오 측은 “지하 1층, 지상 6층의 갤러리 건축 디자인은 일본 디자이너 조 나가사카(Jo Nagasaka)가 함께했으며 옆에 있는 옛 공간사옥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가서 보니 건물의 외관은 검은빛으로, 내부는 하얀 톤으로 꾸며서 극명한 대비를 느끼게 한 것이 두드러졌다. 이전에 사무 공간으로 쓰고 있던 볼재빌딩을 개조했는데, 지하 1층 내부는 다른 층과 달리 어두운 톤으로 하고 새로 문을 만들어 뮤지엄 건물과 통할 수 있게 했다.

사업가이자 컬렉터, 작가인 김창일 회장이 창업한 아라리오는 제주와 천안에도 뮤지엄과 갤러리가 있다. 뮤지엄은 소장품전을 주로 하며 작품을 팔지 않지만, 갤러리는 소속 작가전 등을 펼치며 작품 판매를 하는 것이 다르다. 아라리오의 쌍두마차가 서울 한복판의 같은 공간에 들어섰다는 것이 갤러리 이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갤러리는 재개관전으로 5인의 그룹전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를 진행하고 있다. 갤러리와 함께 성장해온 작가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 등이 참여했다. 전시를 기획한 강소정 총괄디렉터는 “참여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낭만적 아이러니의 성질을 포착해 보고자 한다”고 했다.

독일 낭만주의의 기수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이 정립한 낭만적 아이러니는 현실과 이상, 창조와 파괴, 자연과 감성 등 양극의 사유들을 오가면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하고 주목하는 방법론이다. 작가가 예술적으로 쌓아 올린 환상이 허구임을 스스로 밝히는 반전을 넘어 정답이 없는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시도이다.

지하 1층에서 전시하는 안지산 작가의 작품들은 눈 폭풍 속의 사냥과 채집을 소재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김인배 작가는 1층 전시장에서 관객의 인지 체계를 의도적으로 교란함으로써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사색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2층 수장고를 지나 3층에서는 이동욱 작가의 설치작품을 볼 수 있다. 15㎝ 안팎의 벌거벗은 인물상의 전신 혹은 신체 일부를 보여주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미적 쾌감과 함께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을 주고자 했다. 노상호 작가는 4층 전시장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내놨다.

권오상 작가는 5층 전시장에서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인체 조형의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갤러리 측은 “창을 통해 원서공원과 창덕궁이 보이는 5층은 VIP 라운지로 쓸 예정인데, 이번에만 전시장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권 작가의 작품은 갤러리 건물로 들어오는 입구에도 상설작으로 자리했다. 한 남성이 들고 있는 명품 가방 안에 화집과 도록이 들어 있는 모습으로, 과다한 정보 때문에 갈 곳을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현대인의 상황을 표현했다. 전시는 오는 3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