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을 출간한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가 경기도 용인 서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진우 교수 제공

-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출간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압축적으로 진행된 민주화 과정
갈등해결 위한 여유 갖추지 못해
중도를 비겁·기회주의자로 매도

지나침·모자람 모두 악덕이라던
2500년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극단화 되는 現시대에도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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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64) 포스텍 석좌교수가 중도(中道)의 가치를 역설한 ‘중간에 서야 좌우가 보인다’(책세상)를 펴낸 건 지난 2012년이다. 8년여가 흘렀으나 극단의 사회에 대한 근심은 더 깊어졌다. 왜 한국은 중도보다 극단이 더 매력적인 사회가 됐는가. 어쩌다 진보와 보수 사이엔 ‘대화의 교량’이 아닌 ‘적대감을 부추기는 강’이 놓였는가. 최근 출간한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인플루엔셜)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파시즘적 극단의 시대를 건너는 해법을 모색한다.

지난 24일 전화로 만난 이 교수는 “산업화처럼 민주화 역시 압축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정신적 여유’를 갖추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민주주의적 양식과 의식이 생활 곳곳에 스며들지 못하면서 ‘중도’를 비겁한 사람이나 기회주의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성공은 드물고 실패는 다반사인” 자본주의 체제도 극단화를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는 ‘더 많이’를 핵심 원리로 삼고 한계를 모르는 무한한 욕망을 용인합니다. ‘당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경쟁에서 밀린 대다수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른 채 ‘생산용 기계’처럼 그저 열심히 몸을 움직일 뿐이죠.”

이 교수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중도의 부재를 낳았다면, ‘질주’만 있고 ‘멈춤’은 없는 신자유주의는 중산층을 허물어뜨렸다고 분석했다. “극단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부의 양극화 때문에 균형을 잡아줄 중심이 사라졌습니다. 중산층은 ‘경제적 허리’인 동시에 삶에 대한 상식과 공통 감각을 대변하는 ‘문화적 허리’입니다. 중산층이 튼튼해야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뜻이죠. 두터운 중산층이 있었다면 ‘정치적 쏠림’도 지금처럼 심해지진 않았을 겁니다.”

이 교수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힘’을 살피기 위해 주목한 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침’과 ‘모자람’을 모두 악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악덕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론(中庸論)’이죠.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철학입니다. 언뜻 고루하고 철 지난 이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오늘에도 유효한 의미를 획득합니다. 양 극단엔 소수만 존재하고 대다수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 그 사회는 곧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은 정치·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실존철학의 문제도 주요하게 다룬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변혁은 결국 개개인의 변화가 모여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가슴에 그 어떤 별도 품고 있지 않은” 현대인이 마음의 병을 먼저 치유할 것을 주문했다. “현대인의 영혼을 가장 많이 갉아먹는 병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은 삶의 의지를 파괴하는 부정적 슬픔입니다. 감정의 균형이 깨져 영혼이 흔들리면 우리 삶은 ‘죽음’이 됩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을 강조한 학파는 스토아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적절하게 슬퍼하라”고, “눈물이 나면 우선은 흐르도록 내버려두되 그칠 때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교수는 평정심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으려면 무엇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한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로부터 얻은 통찰이다. “보통 ‘운명론’이라고 하면 패배주의적 체념을 떠올리지만, 스토아 학파의 ‘운명론’은 훨씬 긍정적인 이론입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운명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성찰했기 때문이죠. 이 이론에서도 중요한 건 역시 ‘균형’입니다. 운명과 자유의 조화를 통해 흘러간 과거는 놓아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이니까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