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체제 인정 범위에 대한 합의
③ 경제 격차 극복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은 단순히 휴전선을 없앤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70년을 분단 체제에서 살아온 남북이 평화 공존할 수 있는 군사·안보적 상황 정착과 한 나라의 국민으로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법·제도의 구축, 남북 주민이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갈등 예방 시스템 등이 갖춰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공존 체제가 마련될 수 있다. 남북의 ‘평화공존 체제’ 구축을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 = 평화공존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는 것이다. 남북은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문건인 남북 군사 합의서에서 재래식 전력 감축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합의했지만, 북핵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남북 간 안보 불균형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까지도 핵·미사일 실험을 통한 핵 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또 북한은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직후 제국주의 세력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게 핵 무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고, 같은 해 9월 5차 핵실험 직후에는 “서울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발언도 내놓았다. 북한의 핵 폐기, 또는 핵 폐기 프로세스가 가시화된 이후에야 남북 간 재래식 전력 군축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상호 체제 인정 = 평화공존을 위해 북한 체제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는지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의 전면적인 확대를 주장하면서 북한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화만능론’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질서로 삼는 헌법 가치에나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헌법 2조는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헌법적 질서의 토대를 허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체제 변화를 유도하려고만 해서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통일을 위한 북한과의 교류·협력 확대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 셈이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헌법 3조의 틀에 반하지 않는 차원에서 평화공존 단계가 심화하고, 남북연합 단계까지 나아가는 점진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이 성공적인 평화공존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국가보안법을 손질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위원은 “남북교류를 확대하는 것과 북한과의 회합·통신을 처벌하고 잠입·탈출이라는 애매한 처벌 대상 조항을 만들어 놓은 부분은 서로 충돌한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보법을 형법에 통합시키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는 북한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부분이다.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조선반도 전체의 혁명화’, 우리식으로 말하면 ‘적화통일’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국보법과 비슷하게 형법에 반국가, 반민족 범죄 처벌 조항도 있다.

◇경제적 격차 극복 = 남북 간 경제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일도 평화공존을 위해 선행돼야 한다. 남북 간 경제력 차이가 현재와 같이 지속될 경우 남측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고, 이는 미래 세대에게 통일을 평화공존이 아닌 부담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 독일은 동·서독의 갑작스러운 통일 직후 동독이 서독에 비해 낙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속한 동독 투자 조치와 화폐통합, 긴급 사유화 조치 등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경제를 세계 경제로 편입시키는 등의 체제 개혁은 북한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족한 역량은 우리가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