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천차이나타운. 한국의 차이나타운은 1880년대 인천·부산·원산에 조계가 설정되면서 형성됐다. 동아시아 제공

화교가 없는 나라 / 한반도 화교사 / 이정희 지음 / 동아시아

임오군란때 군역상인이 鼻祖
삶에 억척스럽고 재주가 좋아
틈새시장 개척하며 능력 발휘

재일교포 차별엔 분노하면서
駐韓화교 불평등엔 관심없는
한국사회의 불편함을 꼬집어

‘화교’라고 하면 한국인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단어는 중국집 정도다.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슈퍼 파워가 됐고, 전 세계 6000만 명에 자산 규모 5조 달러에 달하는 화상(華商)은 전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지만 화교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중국집과 비단장수 왕서방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식은 소설가 오정희의 1979년 작 ‘중국인 거리’에서 그리 나아가지 못했다. 소설에서 어른들이 경멸하는 어조로 중국인들을 ‘뙤놈들’로 부르자 아이들은 그들을 ‘밀수업자, 아편쟁이, 원수의 생간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 먹는 오랑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으로 상상한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들어섰지만 대중적 인식은 물론, 학술적 연구에서도 ‘화교’는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있다.

20년 넘게 ‘화교’를 연구한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가 내놓은 두 권의 책, ‘화교가 없는 나라’와 ‘한반도 화교사’는 이 빈자리에 대한 진실 메우기를 시도한다. ‘화교가 없는 나라’가 일반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인문 교양서라면, ‘한반도 화교사’는 주석이 빽빽하게 달린 두툼한 학술서다. ‘화교가 없는 나라’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반도 화교 137년 역사를 전하며 일본 재일 교포 차별에 대해서는 국민적 분노를 쏟아내면서도 주한 화교에 대한 오랜 불평등과 차별에는 무심한 대중적 인식을 반성한다.

조선 화교, 한국 화교, 북한 화교를 묶어 한반도 화교로 이름을 붙인 저자는 한반도 화교의 비조(鼻祖)를 임오군란 당시, 한국땅을 밟은 군역상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둥성 덩저우 주둔군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오장경은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병사 3000명을 이끌고 조선으로 파견된다. 이들과 함께 온 군역 상인들은 오장경의 비호 아래 서울에서 활발한 상업 활동을 전개하는데, 이들이 바로 한국 화교의 비조라는 것이다.

이어 서구 열강의 동점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화이(華夷)적 조공관계에서 근대적 국제공법관계로 대전환이 이뤄지던 격동기, 많은 화교가 조선으로 건너온다. 삶에 억척스럽고 재주가 좋은 이들은 중화요리점과 이발소, 양복점의 삼도업(三刀業)을 비롯한 주단포목점, 주물공장과 양말제조, 그리고 채소 재배에 능력을 발휘하며 근대 초기 조선 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건축 기능도 뛰어나 서울의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등의 건축물에도 숙련된 이들의 노동력이 들어갔다. 당시 화교 주단포목 상점은 전국 주단포목 상점 업계에서 상점 수의 2할, 매출액의 3할을 차지했고, 화교 주물공장은 조선 솥 시장의 7할을 독점했으며 화농이 재배한 채소는 조선 주요 도시의 상업용 채소 공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화요리점은 한국식 중화요리를 만들며 외식 산업을 주도했다.

오랜 연구와 발로 뛴 취재로 137년 화교 역사를 풀어낸 저자는 “화교들은 근대 시기에 우리의 일상인 의·식·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우리의 이웃이었다”면서 “우리 근대 역사의 중심은 한국과 일본 간 양자 구도에 가 있지만, 화교 역사를 넣어야 비로소 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저자는 “화교를 아는 것은 중국을 이해하는 창이며, 다문화 사회의 가장 큰 부분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반도 화교사’는 ‘화교가 없는 나라’가 다룬 137년 역사 중에서 근대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 1880년부터 1940년까지에 집중해 한국 근대 경제사에서의 화교의 활동을 세밀히 복원해 냄으로써 이를 한국 근대 경제사 연구에 통합시키려 한다. 두 권은 출발이 같은 만큼, 서로 보완하며 조화로운 한목소리를 낸다. ‘화교가 없는 나라’ 240쪽, 1만5000원. ‘한반도 화교사’ 760쪽, 2만8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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