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죽음을 앞둔 두 노인(왼쪽부터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이 병원을 뛰쳐나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며 죽음의 허무에서 벗어나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 ‘버킷 리스트’의 한 장면. ‘죽음 명상’은 항상 공포와 낯선 대상이기만 한 죽음을 깊은 명상 속에서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삶의 한 단계로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자료사진

12 죽음 명상

“나는 과연 죽음의 병마 앞에서 주교님과 같은 저런 평화스러운 모습을 취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제2대 관구장이자 부산교구 2대 교구장을 지낸 김재헌(분도) 주교의 장례성찬례가 있었다. 윤종모 주교는 부산교구에서 사제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인연을 가져온 김분도 주교를 ‘아버지’같이 생각하며 지내왔다. 이날 장례식에서 윤 주교는 “분도 주교님은 오랜 세월 동안 병석에 계시면서도 한 번도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가끔 주교님을 찾아뵐 때 그런 평화스럽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감탄을 하곤 했습니다”라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

윤 주교는 설교에서 ‘hodie mihi cras tibi’라는 라틴어 속담을 인용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뜻이다. 윤 주교는 “오늘은 내가 세상을 떠나지만 내일은 네가 세상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니 돈이나 권력을 너무 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거나 상처 주지 말고 겸손하고 아름답게 살라는 교훈의 뜻이 담겨 있겠지요”라고 설명한다.

이번 회에는 웰다잉(Well―dying) 명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명상과 불교수행 등에서 흔히 ‘죽음 명상’으로 부른다.

―주변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 있지만, 죽음은 언제나 두렵고 낯섭니다.

“실존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죽음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들려오는 배경음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느라고 바쁠 때는 배경음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죽음이 현실로 코앞에 닥쳤을 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이 암 등 치명적 질환으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죽음학자’로 알려진 퀴블러 로스는 사람이 치명적인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대략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의 단계입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부정하면서 회복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의 단계입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나야? 지금이야?’라면서 자신에게, 가족에게, 의료진에게, 때로는 절대자에게 분노를 표출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의 단계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면서 절대자와 타협합니다. 이번 한 번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신을 믿겠다든지 하면서 말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과 절망의 단계입니다. 이때는 말이 적어지고, 때로는 울기도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의 단계입니다. 죽음의 불가피성을 깨닫고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죽음 명상’이 어떤 도움을 줄까요.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때 한계상황을 느껴서 포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의 평화에서 오는 차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명상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어 죽음과 친해진 사람은 ‘언제든 죽기에 좋은 날’이라는 생각으로 죽음이 찾아올 때 미소로 환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손쉽게 얻어지는 경지가 아니라 오랜 명상 수련 가운데에서 얻어지는 경지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삶에서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문제를 기피하지 말고 죽음의 문제를 명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명상 실습

“내가 캐나다에서 영성상담을 공부하고 있을 때 케인 교수가 인도하는 집단상담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깊은 심호흡을 시키며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게 인도했습니다. 케인 교수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머릿속에 누가 떠오릅니까? 그들에게 이제는 안녕이라고 말할 때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느낌이 듭니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까.’ 나는 집단상담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훨씬 성숙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대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회와 아쉬움을 느낍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왜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들을 그토록 가슴 아프게 했던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마치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는 아무리 후회하고 아쉬움이 남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오는 경험을 한다면 그는 인생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며 살 것입니다. 이런 훈련은 혼자서 할 수도 있고 집단상담에서 여럿이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상상 속에 잠겨 있다가 눈을 뜨면 나에게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도, 다투었던 사람들과 화해할 시간도, 또 의미 있는 일을 해볼 시간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어떤 무서움이나 혐오감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함으로써 죽음과 친해지고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명상은 궁극적 치유를 위한 명상입니다. 죽음 명상에는 ‘자신의 주검 바라보기 명상’‘자신의 장례식 바라보기 명상’‘유언장 쓰기 명상’‘절대자와의 합일 명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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