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믿을 만한 오랜 수련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남긴 기도문이나 시를 명상을 하며 깊이 되새기는 것은 마치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등대처럼 마음 닦기 공부에 도움을 준다. 사진은 해가 저물고 푸른 어둠이 내릴 무렵 전남 진도군 하조도 등대. 박경일 기자 parking@

10 자비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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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까지 세 차례에 걸쳐 치유 명상의 12가지 기본태도를 알아보았다. 윤종모 성공회 주교는 “이런 치유 명상의 기본태도가 온전히 체화되어 사물을 보고 행동할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우려면 많은 노력과 수련이 필요합니다. 기본태도에 대해 묵상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이 곧 ‘마음 닦기’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음을 닦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인간에게서 고유한 영성(靈性·spirituality)을 발견하여 그것을 맑게 닦고, 밝게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음 닦기와 영성 치유는 동전의 앞뒷면 같다고 생각합니다.”

―‘영성’이란 말도 자주 들어보았지만, 쉽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선험주의자들은 ‘초월적 지성’을 가리켜 영성이라 말했는데, 이는 비분석적이고 직관적인 정신활동을 말합니다. 동양에서는 초월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신비한 성향을, 기독교에서는 성령으로 인한 더욱 깊고 온화한 종교적 감정을 영성적이라고 했습니다. 불교 용어로는 불성(佛性)인 것 같습니다.”

―지식이나 알음알이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영성이란 말을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을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유대교 랍비인 해럴드 쿠쉬너가 쓴 ‘선한 사람들에게 왜 불행이 오는가’라는 책 속의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은 세상과 동식물을 창조하는데 마지막으로 포유류를 만든 후 잠시 쉬다가 ‘자, 이제 우리를 닮은 인간을 만들자’라고 합니다. 쿠쉬너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가리킬 때 왜 복수형을 썼는가? ‘우리’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그는 하느님이 다음과 같이 포유류에게 혼잣말처럼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너희와 나, 즉 우리 모습을 닮은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자. 그 피조물은 먹고, 잠자고, 짝짓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너희들, 즉 동물과 비슷한 것이며, 또 동물들의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하게 되도록 만들자’라고 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상징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쿠쉬너의 생각은 영성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적인 요소와 함께 하느님의 형상(Imago Dei)이 있는 존재인데, 하느님의 형상이 바로 영성이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성이란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신의 속성이란 것이죠.”

―하느님의 속성인 영성에 대해 왜 ‘영성 치유’라고 하셨나요.

“성경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후에 신의 형상인 영성은 점점 무뎌지고 어두워졌으며,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며 영성의 뿌리인 절대자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마릅니다. 이런 그리움 때문에 인간은 시나 소설, 그림, 음악, 춤 등을 통해 그것을 추구하고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예술 행위를 영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말씀하셨는데요. 예술은 논리적이기보다 직관적이지요.

“삶과 죽음과 자연, 그리고 절대자 등에 대해서 바라보는 것(觀想·관상)을 핵심으로 압축하여 표현한 시나 깨달음의 지혜 등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 닦기의 좋은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본 것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여러분도 스스로 바라보고 깨달은 바를 시나 짤막한 지혜의 말로써 표현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으로 밤잠을 설치다가, 어느 날 ‘그리움’이란 시를 한 편 써보았습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깊은 밤／나는 잠 못 이루며 뜰을 서성이고 있습니다.／나도 모르는 그가 나를 흔들어／그리움에 목이 타게 하기 때문입니다.／나는 그 그리움의 정체를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흔들어 잠 못 들며 서성이게 하는／그 이에 대한 그리움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흔들어／당신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마르게 하는／당신은 과연 누구입니까?

“저는 이 시를 쓰고 명상하면서, 지금까지 ‘저기 저쪽’에서 찾던 신이 나의 내면의 영성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깨달음과 함께 발견한 나의 모습은 좀 더 크고, 깊고, 신비한 존재였습니다. 보다 높은 자아(higher-self)와 만났을 때, 저는 시기, 질투, 분노, 욕심, 걱정, 집착 등의 왜곡된 정서가 크게 치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 프란시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나 선시(禪詩), 윤동주의 시를 마음을 열고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를 쓰고 좋은 시를 읽은 것으로도 영성 치유와 마음 닦기가 되는군요.

“그런데 시를 읽는 방법이 보통 시를 읽을 때와는 달라야 합니다. 시를 한 편 읽을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명상 속에서 바라보십시오. 어떤 시원한 느낌이 여러분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갈 때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십시오. 마음이 닦이고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마음 닦기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깨닫는 수준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만 보아서는 마음 닦기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물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음 닦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