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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민 경희대 교수·회계학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조지 레이코프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어보면 단어가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특정 단어는 표면적인 프레임을 만들게 되고,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관점이 달라지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용어도 이런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내(社內)유보금’이다.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750조 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일반인들은 그 그룹이 마치 750조 원에 달하는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내유보금은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 중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시키는 금액을 의미한다. 회사는 발생한 이익의 일부를 주주에게 배분하지 않고 사업의 지속 또는 성장 등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는데, 이 같은 금액을 매년 누적해 회계상으로 나타낸 것이 사내유보금이다. 즉, 주주가 회사 이익의 일부를 재투자한 금액으로서, 자기자본의 주요 구성 요소이며, 또 다른 재원인 ‘타인 자본’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모든 자산에 스며들게 된다. 기계설비나 공장, 재고, 연구·개발(R&D)은 물론 은행예금 등에 흩어져 있다. 결국, 사내유보금의 크기는 회사가 보유한 총자산 가운데서 주주의 재투자를 재원으로 하여 취득한 자산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셈이다.

사내유보금이란 용어에서는 몇 가지 오해가 생기게 된다. 우선, 사내유보금을 마치 곳간에 쌓아 놓은 현금처럼 언제든지 필요하면 꺼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은 주주가 재투자한 누적 금액을 표시할 뿐 현금 보유액과는 무관하다.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이미 재고자산, 유무형 자산 등에 투자돼 있다. 이 때문에 사내유보금을 풀라는 것은 이미 투자한 자산을 처분해 다른 곳에 투자하라는 이상한 요구가 된다. 기업들이 풀어야 할 것은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수익성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면서도 기업 경영에 불필요한 자산인 잉여자금이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사내유보금이 많은 회사는 수익성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내유보금의 주요 원천이 사업이익이므로 사내유보금이 많은 회사는 이익도 많이 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생각이다. 이익을 많이 내면 사내유보금 규모도 커질 가능성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엄청난 이익을 내더라도 전액 배당을 하게 되면 사내유보금은 전혀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회사가 이익을 전액 재투자한다면 사내유보금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당기순이익이 주주의 기회비용을 반영하지 않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10%의 기대수익률을 가진 주주가 1조 원을 투자해 당기순이익 800억 원이 났다면, 주주의 기회비용은 1000억 원(1조 원×10%)이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 200억 원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300억 원을 배당한다면 나머지 500억 원만큼 유보금은 커지게 된다. 경제적 손실이 났더라도 사내유보금은 지속적으로 커질 수 있다.

정치권 등은 경제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내유보금 카드’를 꺼내 든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논란을 보면, 사내유보금 용어에 대한 오해 때문에 문제 제기를 잘못하고, 엉뚱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이라도 정치권 등은 올바른 용어를 사용,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뒤 올바른 해법을 찾는 노력에 함께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