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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향한 레이스가 한창이다. 내년 대선을 치를 지도부를 선출하는 만큼 양당 모두 흥행에 나름 애를 쓰고 있겠지만, 국민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여야(與野) 모두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은 죄다 빠지고 고만고만한 후보들만 나온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 인물은 원래 이런 대회를 통해서 자라난다. 더 큰 이유는 여야 모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눈길을 끌 참신한 후보도 없고, 엄중한 안보·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관련 공약도 사실상 없다.

지금까지 두 차례 열린 새누리당 합동연설회의 경우 외형만 보면 대성황이었다. 수천 명이 연설회장 안을 가득 메웠고 연설회장 바깥에는 꽹과리와 북소리가 요란했다. 국민의 눈에는 이 또한 조직적 동원의 구태일 뿐이다. 후보들도 4·13 총선 참패의 큰 요인 중 하나인 계파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다. 합동연설회나 TV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공약과 비전 제시보다는 계파 이슈로 경쟁 후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당대표 후보들이 낮은 인지도 문제를 참신한 공약으로 돌파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후보 대부분이 공천 시스템 개선과 4·13 총선 참패로 늘어난 원외 당협위원장에 대한 처우 개선을 공약했다. 이는 당내에서 지지표를 얻는 데는 중요하겠지만 국민의 관심사는 아니다.

국민의 관심사인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구호는 있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없다. 미국 대선 이후 예상되는 여러 우려 사항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찾기 어렵다. 한·중·미 관계를 강타하고 있는 사드(THAAD) 배치에 대해서도 막연히 필요하다고만 할 뿐 그 불가피성과 무해성을 정확히 꿰는 후보는 없다. 새 지도부 선출로 긍정적인 여론을 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정권 재창출 로드맵을 그려나가겠다는 게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구상이다. 그만큼 전당대회의 흥행 여부가 중요해진다. 하지만 정말 흥행이 문제라면 왜 굳이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또 휴가철에 전당대회를 하는가? 국민은 처음부터 그들만의 잔치를 계획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민주 전당대회도 별반 나을 게 없다. 지금은 후보 4명 가운데 1명을 탈락시키는 예비경선 과정인데 수권(受權)을 위한 정책 경쟁이나 비전의 대결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계파의 단층선은 특정 인사 중심으로 그어진다. 당내 다수파의 정서를 쫓아 후보들의 주장이 점점 더 과격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4·13 총선에서 드러난 표심과는 딴판이다. 이래서는 더민주의 전당대회도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 수권 정당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정당의 전당대회는 흔히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강령(綱領)을 등장시킴으로써 위기 국면을 돌파하는 계기가 된다.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한 영국의 보수당은 정치 경력이 일천한 38세의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내세우는 모험을 감행했다. ‘따뜻한 보수’를 표방한 캐머런의 보수당은 5년 뒤 총선에서 노동당에 승리했다. 200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는 버락 오바마라는 정치 신성(新星)을 탄생시켰고 그는 4년 뒤 초선 상원의원으로 공화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옛것은 죽어 가는데 새것은 아직 자라나지 않은 상태’가 위기라고 간파한 바 있다. 새 움을 틔워 이 나라의 위기를 해소하는 그런 정당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