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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비급여 의료비 표준화 시급

전체 1만6680개 비급여 중
표준화 비율은 9.7% 불과

건보 비급여 1.3배 늘 때
실손보험은 17배나 ‘껑충’

의료계 “보험사 상품설계 잘못”
업계 “의료계 실손보험 악용”
보험금 지급 ‘적정기준’ 절실

“실손보험 부실 때문에 비급여(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아 실손보험을 가입하지 않으면 본인이 치료비를 전액 부담) 가격을 손보겠다는 것은 배기량이 2000㏄라는 공통점 때문에 저가 부품을 사용한 값싼 자동차와 고급 스포츠카 가격을 통일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의료계 A 관계자)

“싸구려 부품을 사용한 자동차가 고급 스포츠카 가격을 받으려는 게 문제입니다. 아무 기준 없이 제멋대로 가격을 정하는 비급여 체계 아래에선 실손보험료는 10년 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보험사 B 관계자)

환자와 의사 간 ‘짬짜미’로 무분별한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를 유발, 실손보험 부실로 이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비급여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실손보험의 부실 원인은 보험사의 잘못된 상품 설계에 있다며 비급여 체계를 손보는 건 “빈대(실손보험 손해율)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정면 반박하고 있어 보험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30일 보험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연평균 급여 의료비 증가율은 6.7%다. 반면 비급여 의료비 증가율은 연평균 10.2%로 급여 의료비보다 3.5%포인트 높다.

또 국민건강보험의 비급여 의료비는 2010년 17조9000억 원에서 2014년 24조 원으로 약 1.3배로 늘어났지만,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은 같은 기간 800억 원에서 1조5000억 원으로 17배나 증가했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130%에 육박해 이미 보험료보다 지급되는 보험금이 더 많아진 적자 구조다.

비급여 의료비 상승 원인은 병원마다 제각각인 ‘고무줄 가격’에 있다. 감사원 자료를 보면 같은 비급여 항목이지만 병원별 가격 차이는 평균 7.5배나 된다. ‘추간판 내 고주파 열 치료술’의 경우 병원별로 최소 20만 원에서 최고 350만 원을 받고 있어 병원 간 17.5배나 차이가 난다.

고무줄 가격을 가능케 하는 건 비급여 코드 표준화가 제대로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비급여 코드 표준화 비율은 전체 1만6680개 비급여 항목 중 9.7%(1611개)에 불과하다. 비급여 의료가격과 의료량에 대한 관리체계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치료비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얘기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이 지난해 전국 종합병원 대상 ‘진료비 세부 내역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 병원이 건강심사평가원의 코드(EDI CODE)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코드를 사용했다. 같은 진료 항목과 코드에 대해 각기 다른 가격으로 비용을 처리했다.

전문가들은 실손보험 부실을 막으려면 비급여 코드 표준화를 대폭 확대해 보험금 지급의 적정성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비급여 항목 치료라고 하더라도 치료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병원 규모 등에 따라 비급여 항목 가격 차이가 커 보험사들은 손해율을 관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또 “비급여 코드 표준화를 통해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손해율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사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사례가 하지정맥류 관련 수술이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있는 정맥이 부풀어 올라 피부 밖으로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오는 질환이다. 비급여 수술인 하지정맥류의 상급종합병원 진료비는 70만∼180만 원, 의원급은 350만∼420만 원으로 최대 5배가량 차이가 났다. 일부 병원은 하지정맥류 수술이 실손보험이 적용된다고 홍보하면서 수술 건수를 늘리기 위해 미용 목적으로 받으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보험사가 처음 실손보험을 설계할 때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밖 수준인 고무줄 가격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아예 올해 1월 실손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 하지정맥류 치료를 위한 레이저 및 고주파 시술을 실손보험 보장 항목에서 제외했다. 신규 실손보험 가입자나 약관을 갱신해 새 약관을 적용받는 가입자는 하지정맥류 치료를 위한 레이저 및 고주파 시술을 받을 때 실손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금감원의 이번 결정은 의료 기술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실손보험 손해율이 높은 원인은 보험사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지 비급여 문제에 따른 과잉진료 때문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유혹해 실손보험에 가입시키고, 이제 와서 실손보험 부실이 의료계 과잉진료 때문이라고 하는 보험사의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손보험의 허점을 악용한 보험사기에 대해서도 “환자 입장에선 자신이 가입한 보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당연하다”며 “또 일부 병원의 실손보험 악용 문제를 전체 병원으로 확대해 비급여 체계를 고치자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반면 보험업계는 비급여 체계를 손보지 않고서는 실손보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가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고, 의료계가 실손보험을 악용하고 있어 실손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올해까지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비급여 코드 표준화 확대를 위한 방안도 지속적으로 마련 중”이라고 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