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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록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정치학

이번 제20대 국회는 국민의 각별한 기대와 관심 속에서 개원했다. 국회법 제5조 3항은 국회는 임기 시작 7일 이내에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단을 선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번 20대 국회도 역시나 출발부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국회가 헌법 조항까지 위반하면서 예산안 처리를 미룬 게 다반사였으니, 국회법을 어기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회가 4·13 총선 민심의 엄중함을 잊지 않고 있다면 이렇게 직무 태만일 순 없다. 각 당은 20대 총선 민의를 왜곡하거나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국민의 삶과는 무관하게 당리당략 차원에서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입법기관으로서 국회는 법을 솔선수범해서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입법기관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 불법인지조차도 모르는 지경이 됐다.

국회법에 규정된 국회의장단 하나도 제때에 선출하지 못한 국회라면 존재 가치도 없다. 이런 국회라면 국회의원들이 자진해서 세비(歲費)를 반납하고 전원 사퇴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도리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의 문제는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적대적 의존관계를 생존 기반으로 하면서 정치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지금 원(院) 구성을 둘러싼 여야 간의 지루한 공방이 바로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인류 역사는 위기의 연속이기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를 특별히 위기라고 하는 건 과장일 수 있다.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질곡과 폭풍우의 역사를 꿋꿋하게 헤쳐오고 있지만, 분명한 건 지금 우리는 미증유의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정치적 리더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에서 무능은 부패보다 심각하다. 부패에는 분노하지만, 무능에는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반역을 위해 사람을 모이게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억압이다”고 설파한 영국의 정치사상가 존 로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약 오늘날 한국에서 반역을 가능하게 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을 해결하지 못한 정치권의 무능과 특권층의 부정부패와 갑질 행태일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이며 철학자인 루소는 현대 민주주의를, 선거 때에만 국민이 주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되돌아가는 제도라고 비판했지만, 작금의 현실은 우리 국민은 선거가 끝나도 더는 노예가 아닌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제 정치권이 여기에 해답을 내놔야 한다.

어느 사회든 아랫물이 혼탁해 윗물이 썩는 법은 없다. 정치권의 20대 총선 민의에 대한 반성과 각오는 어느새 공염불이 됐고, 지금의 행태로 봐서는 20대 국회도 이전 국회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치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는 폴리티션(politician)과 스테이츠먼(statesman)이 있다. 폴리티션은 선거만을 의식하는 정치인을, 스테이츠먼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인을 뜻한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단 몇 명만이라도 스테이츠먼이 있다면 국회도, 국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을 20대 국회의원들에게 들려주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좋은 뱃사공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