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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 경희대 교수·정치학

제20대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주요 정당의 공천작업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적잖은 현역 의원이 출마를 포기했고, 더 많은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탈락했다. 국회의원의 면면을 놓고 보면 상당한 물갈이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인물 교체가 국민의 원성이 자자한 국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파천황(破天荒)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늘 새 인물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지난 몇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자의 30% 안팎은 늘 초선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피가 수혈됐음에도 국회가 국리민복에 더 충실하고 국가적 난제들을 더 잘 해결하게 됐다는 증거는 없다.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아무리 많은 새 인물이 진입하더라도 제20대 국회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정당의 공천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선수(選數)가 높고 잘 알려진 국회의원이라도 당의 공천기구에서 찍어내면 탈락한다. 일단 탈락하면 이들이 국회로 생환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권한을 남용해 문제가 된 경우나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저성과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멀쩡한 사람도 어떤 이유에서든 공천에서 탈락하면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경향은 주요 정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나 선거구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정당의 공천이 시그널로 작용해 유권자들이 새롭게 공천받은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천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줄 잘 서는 것이 사활의 문제가 되는 한 대의(大義)에 따른다거나 소신을 밀어붙이는 통 큰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방법은,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당선될 만큼 험지(險地)인 지역구에서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 정도 기반을 다지려면 지역구의 크고 작은 민원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행사, 심지어는 경조사까지도 잘 챙겨야 한다. 지역 유권자들은 좋아하겠지만 이런 국회의원에게서 국리민복을 앞세우는 큰 정치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진배없다.

이 방법이든 저 방법이든 국회의원이 생존 게임에 골몰하는 한 큰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을 통한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소규모 지역구로 잘게 분절된 데다, 많은 지역구는 이른바 텃밭에 위치한 ‘포획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유인 구조가 이렇게 잔 정치로 가도록 돼 있는 이상, 국회의원이 지금과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건 허망(虛妄)하다. 오로지 당 지도부나 권력 실세의 눈치를 보거나 아니면 지역구의 협애(狹隘)한 이익이나 챙길 것이다. 정치인(politician)은 많지만, 정치가(statesman)는 나오기 어렵다. ‘구케(국회)에만 가면 구케(‘시궁창’의 방언)에 빠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회의원이 달라지고 국회가 달라지려면 시대착오적인 현행 소선거구 기반의 대의제를 근본부터 재편할 필요가 있다. 지역대표제는 근대 민주주의가 출현할 당시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 대다수가 평생 한곳에 눌러살았고 지역마다 특성과 이익도 크게 달랐다. 지역 대표를 필요로 했던 요인들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 이제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작은 이익만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챙겨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소선거구제 아래서는 국가적 문제는 국회의원의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개선책을 제안한다. 광역시도 단위의 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인구에 비례해 각 선거구에서 선출할 의원 수를 배정한다. 각 정당은 각 선거구에 배정된 의원 수만큼의 후보를 무순으로 추천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 1인에게 투표한다. 각 정당이 획득할 의석은 각 정당의 후보들이 얻은 표를 모두 합산해 그 비율에 따라 배정한다. 각 정당이 획득한 의석수가 결정되면 각 당에서는 개인 득표순으로 당선자를 결정한다.

이 제도는 예선과 본선을 합친 것으로 후보의 순위를 당이 아니라, 유권자가 결정케 함으로써 정당 내에서도 후보들 간에 경쟁하게 만들고, 소지역주의를 넘어 좀 더 큰 정책적 이슈를 다루게 하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