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6월 4일 경희대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미래로의 여정: 정치와 대학’을 주제로 한 첫 번째 대화에서 조인원(사진 위 오른쪽) 총장과 학생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맡은 김민웅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길사 제공

학생 “경쟁위주 현실과 학문의 벽 만만찮아” vs 총장 “인문학은 인생의 시야를 열어주는 문”

희망의 출구는 어디에?
실용·현실주의가 내다버린 ‘큰 이야기’에 있지 않을까

대학 본연의 가치는?
심원한 학술·학습 지키며 문명의 진보 이뤄 내는 것

총장과 학생들이 마주 앉았다.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학생들의 질문에서는 유사 이래 가장 힘겹다는 이 시대 청년세대의 실존적 절박함이 짙게 묻어났다. 총장은 학자이자 대학 운영자로,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경청하고, 조언하고, 같이 고민했다.

경희대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조인원 총장과 교수, 학생들이 함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대화의 시간을 보냈다. 국내 대학에서는 처음인 이 대화 자리는 ‘현재의 가치관과 시스템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벼랑 끝 공감대에서 시작됐다. 사회적 사유와 행위 대부분이 결국 ‘돈과 경쟁의 논리’로 환원되는 시대, 대학조차 시스템에 파묻혀 취업률로 학문을 재단하는 시대에 학생들은 어떻게 미래를 꿈꾸고, 대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대학 공통의 문제를 ‘까놓고’ 얘기했다는 점에서 우선 관심을 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주부터 현실정치, ‘세월호’ 문제까지 격조와 치열함을 넘나드는 대화들도 오갔다. 경희대는 이 대화록을 ‘내 안의 미래’(한길사)라는 책으로 최근 출간했다.

정치학자인 조 총장은 자신의 학생 때 이야기와 현실에 대한 진단으로 대화를 풀어냈다. 그는 “누구나 그렇듯 내면과 주변 세계에 관한 고민으로 젊은 시절 방황을 많이 했다”며 “치열하게 꿈과 실천을 연결했더라면 하는 것이 후회로 남는다”고 돌아봤다. 한국 사회를 ‘압축의 시대’로 요약한 그는 “그로 인해 ‘근대화 신화’를 이뤘지만, 그렇다고 인간과 사회, 국가의 본령을 부 축적과 재물의 가치로만 환원할 수 없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문제를 푸는 시발점으로 제안했다. 그는 “경제도 국정도 시민의 안전과 행복,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존재해야 하고, 그럴 때만이 우리는 사람의 미래, 후대에 물려줄 공적 가치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교육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제학과 이장은 학생은 “경쟁 위주의 현실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경희대가 인문교양 강화를 위해 만든 후마니타스칼리지 사이의 만만찮은 벽”을 날카롭게 질문했다. 이에 대해 조 총장은 “교양은 학문과 인생의 시야를 열어주는 문이며, 앞으로 어떤 삶의 철학과 함께 인생을 살 것인가 라는 물음이 생길 때, 각자의 답이 자신의 진정한 진로이자 삶의 토대, 역량이 된다”며 “단기적인 필요와 함께 긴 안목의 노력이 필요하다. 경쟁기준도 언젠가는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답했다.

조 총장은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의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경제실용주의와 현실주의가 저버린 ‘큰 그림’ ‘큰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은 물론 학생들의 취업 준비를 위해서도 존재해야 하지만, 시장과 경제 논리가 대학의 ‘모든 것’이 돼 버리면 대학 본연의 가치인 학문적 진리와 공적 실천이 위협받는다. 대학의 심원한 학술 가치와 자유로운 학습 가치를 지켜내면서 인간과 사회, 문명의 진보를 이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 맺는다.

총장과 대화에서 정치외교학과 박예지 학생이 제안한 ‘독립연구’가 올해 1학기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채택되기도 했다. 독립연구는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 과제를 정하고 교수의 지도 아래 자율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창의적인 프로그램이다. 또 경희대는 이 책의 판매수익을 기반으로 ‘전환기금’(가칭)을 조성, 이번 대화에서 뜻이 모인 문명사적 전환에 대응하는 창조적 연구와 교육, 실천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