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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준 / 경희대 교수·경영학

경제 정보 서비스회사 블룸버그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 세계 부자 상위 400명을 부(富)의 원천에 따라 분류한 결과 65%인 259명은 자수성가형이고 35%인 141명은 상속형으로 나타났다. 이들 400명 중 한국 부자는 5명인데 모두 상속자다.

그런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은 우리와 달리 상속자형보다 창업자형이 다수라는 점이 관심을 집중시킨다. 미국은 400위 안에 든 125명 가운데 71%인 89명이, 중국은 29명 중 97%인 28명이, 일본은 5명 모두가, 러시아도 18명 전원이, 인도는 14명 가운데 64%인 9명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경제발전 단계상 신흥국이거나 시장경제 체제의 역사가 짧은 국가의 경우에는 당연히 창업한 부자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가 창업 부호의 비중이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오랜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이 우리보다 자수성가형 부자의 비율이 높은 것은 우리의 상황을 성찰하게 만든다. 경제발전 역사가 오랜 서유럽 국가들의 통계치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낮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보다 높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나라에 자수성가형 부자가 적은 이유는 네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전략으로 압축 성장을 도모하여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자원 기반이 미미한 상태에서 단기간에 이룩한 세계 사상 유례 없는 성과를 고려할 때 이 전략의 선택은 유효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성숙기에 이른 지금 자원 집중에 따른 기업 생태계의 쏠림 현상으로 신생 기업의 창업 부진, 중소기업의 성장 미흡, 고용 부진 등 대기업 중심 경제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금융자본 시장의 후진성이다. 참신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믿고 투자해서 회사를 키우는 창업 지원 금융자본 시스템이 경쟁국과 비교해 턱없이 뒤떨어져 있다. 셋째, 그간 정부가 규제 개혁에 노력해 왔지만 창업과 관련된 법과 제도, 규제는 여전히 후진적이어서 창업을 촉진하기엔 태부족이다. 넷째,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과 분열은 기업가 정신과 창업 의욕을 약화시키고 있다.

창업 부자의 감소는 우리 사회의 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고 역동성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국가 발전을 가로막게 되므로 창업 부자를 늘릴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세계 경제의 통합화와 글로벌화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대표 주자로 선전할 수 있도록 대기업은 자유롭게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하되,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정부는 공정한 규칙 수호자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벤처 창업 자금의 투자와 회수를 촉진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 제도를 보완·발전시키고, 금융 서비스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금융 건전성과 투자자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과 시장 감시는 강화하되 금융회사 및 금융투자회사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금융 정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와 환경 보호 분야 규제는 강화하되 나머지 분야의 창업 관련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사회를 경제적 강자와 약자로 나누고 강자에게 갑질, 단가 후려치기 등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과 같은 이념적 분열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