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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협정문이 지난 5일 공개되면서 우리나라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다. 주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우리에게 플러스 되는 부분도, 부담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며 “협상의 룰을 잘 살펴보고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공산품 양허는 내용 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비해 수준이 높지 않다”며 TPP가 발효되더라도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국내의 여러 언론 매체는 TPP가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TPP에 대한 우려의 근거는 대개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FTA 경쟁에서 뒤진 일본이 단숨에 미국을 비롯한 11개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FTA 선점 효과가 사라지고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미국·캐나다·호주 등 TPP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인데, TPP가 발효되면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TPP의 누적 원산지 규정 때문에 TPP 회원국들 사이에 가치사슬 통합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예컨대, 일본 기업이 TPP 회원국인 베트남에서 수입한 물품을 사용해 미국에 수출해도 TPP 역내 원산지로 인정받아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TPP 국가들 사이에 경제 통합이 가속화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TPP 가입을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니다. 우선, TPP가 발효돼야 우리가 가입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데, TPP 발효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TPP가 발효되려면 12개 설립 회원국이 협정서 서명을 마친 이후 2년 이내에 국내 비준 절차를 모두 마치거나, 2년이 지난 시점에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6개국 이상이 완료하면 그러한 나라들을 중심으로 발효된다. 즉, 역내 GDP의 56.3%를 차지하는 미국과 16.5%를 차지하는 일본이 비준해야만 TPP는 발효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TPP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하고,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있는 주요 후보들이 TPP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곧 미국의 비준 완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심지어 협정문 수정을 위한 추가 협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돼 2017년 초에 발효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가입을 위한 협상 개시 시점은 그보다 상당히 뒤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우리의 TPP 가입을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 및 멕시코와 어렵고 긴 협상을 해야 하고 미국과도 한·미 FTA를 넘어서는 추가 협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가 지금 서둘러야 할 것은, 우선 국회에 계류 중인 한·중 FTA를 조속히 비준해 발효시키는 일이다. 한·중 FTA 발효는 미국이 한국의 TPP 가입에 더욱 적극적이도록 만들 것이고, 일본으로 하여금 한·중·일 3국 FTA 협상에 적극적이도록 만들 것이다. 한·중 FTA와 한·중·일 FTA는 동아시아 협력의 모멘텀을 살려내고,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이 아니라 협력의 길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TPP의 조기 발효에 대비해 우리나라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협상 대책도 준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