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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정치의 비생산성을 가지고 순위를 매기면 한국도 메달권에 들겠지만, 금메달감은 단연 이탈리아일 것이다. 우선, 정치가 불안정했다. 제2차 대전 이후 제정된 새 헌법으로 내각제가 도입된 이래 정부가 1년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헌법상 상원에 정부를 퇴진시킬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법률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헌법상 하원을 통과한 법안을 상원에서 단 한 자라도 수정하면 입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원은 이탈리아 정치가 불임 상태를 면치 못하게 만든 제도적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이탈리아 정치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상원이 지난 13일 상원의원의 정수를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는 한편 상원의 정부 퇴출권을 없애고 입법권을 대폭 제한하는 개혁안을 찬성 179표, 반대 16표로 통과시킨 것이다. 물론 이 개혁안은 헌법 개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원과 상원을 다시 통과하고 내년 중반에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상원이 스스로 ‘감원(減員)’을 택한 만큼 세 장애물 모두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현지에서는 보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상원 개혁안에 앞서 지난 5월에는 선거법도 찬성 334표로 개정했다. 제1당에 승자 보너스를 배정해 정수 630명의 하원 의석 중 최소 340석의 안정된 다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든 것이 골자다. 외형과 달리 과정에서는 반대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각종 스캔들로 국민의 정치 불신이 극에 달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드러난 많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마테오 렌치 총리의 개혁 정치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의원들로 하여금 정치 개혁에 반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대대적인 개혁도 아닌 선거구 획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 기구화로 국민의 기대를 부풀렸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위원들이 여야(與野)의 대리전을 벌이다가 법정 시한 내에 획정안을 제출하는 데 실패했다. 획정위의 좌절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명, 여당과 야당이 각각 4명의 위원을 추천한 상태에서 위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의결토록 했기 때문에 말만 독립기구였지 여야 합의 없이는 사실상 어떤 결정도 불가능했다.

비례대표를 줄이는 대신 지역구를 늘려 없어질 농촌 지역구를 최소화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인구편차 기준도 충족시키자는 여당의 안이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야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줄일 수 없다고 고집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여당이 수용하면 비례대표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야당은 말하지만, 여야의 지역 기반인 영남·호남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충성도’가 크게 차이가 나는 현실에 비춰 야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여당이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국민은 여야가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다가 선거 임박해서 슬쩍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지 우려한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헌법에 국회의원 정수를 굳이 ‘200명 이상’이라고 한 것은 국회의원의 정수를 200명에서 299명 사이로 하라는 뜻으로 보는 게 옳다. 국민 정서도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상원이 왜 스스로 의석수를 줄이는 결정을 하게 됐는지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