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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 논설위원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국내 과학자들 사이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것이 그래핀(graphene)이라는 신(新) 물질이다. 이들은 2004년 연필심을 갈아 만든 흑연을 스카치테이프에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는 아이디어로 얇은 막의 그래핀을 처음 분리해냈다.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김필립(48) 현 하버드대 교수는 간발의 차로 첫 발견의 영예는 놓쳤지만, 이듬해 네이처지(誌)에 이들 수상자와 나란히 그래핀의 물리적 특성을 규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래서 공동 수상이라면 김 교수도 포함될 거라는 기대가 컸으나 결국 무위에 그쳤다. 한국인으로선 노벨과학상에 가장 근접했던 사례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6각형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평면 구조물이다. 머리카락 25만 분의 1 두께의 종이 형태를 떠올리면 쉽다. 규모론 미물이지만 가진 능력은 막대하다. 철보다 2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전기가 잘 통한다. 전자 이동성도 반도체에 쓰이는 실리콘의 100배다. 투명하고 신축성까지 좋다. 그래서 ‘꿈의 신소재’다.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물질은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든다. 지금 거론되는 응용 분야만 해도 자동차 외장재와 휘는 디스플레이에서 반도체·이차전지·방열재·방탄복·나노잉크·조명에 이르기까지 걸치지 않은 곳이 드물다. 그래핀을 빼고 산업의 미래를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유럽연합(EU)·미국·중국 등 각 나라와 글로벌 기업들은 진작에 장기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선점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과학계에선 하루에도 몇 편씩 그래핀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 시작이 괜찮은 편이다. 김필립 교수처럼 연구인력도 수준급이고, 그래핀 관련 특허 수는 미국과 1, 2위를 다툰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후발주자로서 핵심 소재·부품의 원천기술이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6일에는 정부가 2020년까지 핵심기술 85개를 확보한다는 ‘그래핀 로드맵’도 발표했다. 다만, 연구에 비해 상용화 진척 속도가 부진한 것이 걸린다. 상품화하지 못하는 신기술은 의미 없다.

삼성전자가 1분기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선 데는 꾸준하게 수익을 내온 반도체 기여가 컸다. 확실한 소재의 힘이다. 그래핀은 미래 한국의 반도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