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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 경희대 교수·정치학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1일 첫 전체회의를 가지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회의에서 주된 논의의 대상은 역시 선거구 획정 문제였다. 문제는 이날 회의에서 쏟아진 발언들의 내용이다. 헌재 결정의 타당성을 정면으로 의문시하는 발언도 있었고 국회의원의 정수를 360명으로 늘리자는 발언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 양대 정당이, 과거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장악했던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 기구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을 보고 국민은 정치 개혁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걸었었다. 하지만 이날 발언들은 자칫하면 이 위원회가 정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을 하는 특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마저 자아낸다. 정개(政改)특위가 할 일은 한시바삐 공직선거법 개정에 필요한 몇 가지 대강과 원칙만을 정하는 것이지, 거기에 담길 구체적인 내용까지 시시콜콜 정하는 게 아니다.

첫째, 구체적인 내용을 정개특위에서 논의해 정하는 것은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선거구를 사실상 국회가 획정했던 과거와 달라질 게 없다. 비유하자면 말로는 생선을 제3자에게 맡겨 나누겠다고 해 놓고는 어떻게 나눌지를 미리 정해 주는 격이다.

둘째, 원칙만 논의해야 합의가 쉽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가 지적했듯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 간의 합의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뒤에서나 가능하다.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게 되면 이해득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게 마련이다.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따지다가 공직선거법 개정이 늦어지면 선거구획정위가 활동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19대 총선의 경우 선거구획정위는 불과 80여 일 활동했다. 하지만 내년 4월 13일 치러질 제20대 총선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를 기존의 3 대 1에서 2 대 1로 줄이라고 한 결정을 선거구 획정에 반영해야 하므로 분석과 검토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개특위가 할 일은 선거구획정 위원의 자격과 구성, 국회의원 정수,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 비율 같은 원칙만 정해 하루빨리 공직선거법을 통과시키는 일이다. 나머지는 선거구획정위에 맡겨야 한다. 이 원칙을 정하는 데에도 정개특위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만에 하나라도 의원 정수를 늘려 헌재(憲裁)의 결정에 맞추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2001년 헌재가 인구 편차를 4 대 1에서 3 대 1로 줄이라고 결정했을 때에도 273석이던 의원 정수를 299석으로 늘려서 헌재의 기준에 맞춘 전례에 비춰 여야 모두 의원 정수 늘리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헌법에 국회의원의 정수를 ‘300인 이상’이 아니라 굳이 ‘200인 이상’으로 명시한 것은 299명까지로 상한을 설정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만큼 의원 정수는 그대로 두면서 비례대표 의석(議席)을 줄이고 지역구 의원을 늘려서 헌재의 기준을 맞추려는 시도도 있겠지만 이 또한 곤란하다.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에서 발생하는 사표로 인해 유권자의 선호와 의석 분포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괴리를 줄이는 데 큰 목적이 있다. 여성 대표권을 얼마간이나마 보장해 주는 것도 비례대표다.

끝으로, 중앙선관위에서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구가 줄어들 권역의 핵심적 이익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결코 의원 정수를 늘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