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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스즈키의 세계기록을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축하보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각오가 먼저 들었죠.”

한국이 올림픽 육상에서 메달을 딴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인 ‘한국 경보의 간판’ 김현섭(30·사진). 23일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육상단에서 만난 그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아시아 20㎞ 경보선수권대회’ 얘기부터 꺼냈다. 지난 15일 일본 이시카와현 노미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그는 한국 신기록인 1시간19분13초로 준우승했다. 지난 대회에서 김현섭에게 패했던 일본의 스즈키 유스케(27)는 이날 세계신기록(1시간16분36초)을 작성했다.

이날 김현섭은 내심 1시간 18분대 진입으로 우승을 노렸으나 두 차례의 경고에 위축되며 한국 신기록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스즈키의 세계기록 작성은 그에게 ‘나도 해볼 수 있다’는 큰 자극이 됐다. 김현섭은 “처음에는 스즈키의 기록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며 “신기록을 냈으니 축하해야 하는데, 다음번에 내가 더 좋은 기록을 내겠다는 승부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오는 8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둔 김현섭은 “내가 이긴 경험이 있는 스즈키를 보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세계선수권대회 및 올림픽 메달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며 “이번 대회에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육상선수답지 않게 깨끗한 운동화를 신는 김현섭에게 그 이유를 묻자 “새 운동화다. 내 발에 맞게 특수제작한 제품인데 보통 1년에 열두 켤레 정도를 소비한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켤레 정도가 훈련으로 닳는 셈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육상선수로 자리매김했지만 김현섭이 항상 정상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설악중 재학 당시 800m와 1500m 장거리 주자로 육상을 시작했지만 또래 여자 선수들에게도 뒤지며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김현섭은 “당시 코치선생님이 부르더니 경보로 종목을 바꾸든가, 육상을 그만두든가 결정하라고 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심한 ‘굴욕’을 당한 김현섭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육상을 시작할 당시 아버지가 “끝까지 하지 못할 거라면 시작하지 마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경보로의 전향을 받아들인 김현섭은 중학 졸업 즈음에는 도(道)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고교에 가서는 나이 많은 선배들에 다시 뒤졌다. 김현섭은 “그때는 정말 중간에 그만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1학년 중간에 동계훈련을 열심히 했다”며 “그러다 보니 2학년 첫 경기 때 학생 신기록이 나오더라”며 국내 1인자가 되기까지의 역경을 토로했다.

중학교 때 만난 동급생과 연애 끝에 결혼한 그는 아들 민재(9) 손을 잡고 축구교실에 가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김현섭은 “훈련을 하고 오면 피곤하긴 한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사진 =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