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영조 / 경희대 교수·정치학

김무성 대표의 보수혁신위원회 설치로 시작된 새누리당의 정치 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 당 보수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 특권(特權) 내려놓기’ 차원에서 마련한 혁신안이 지난 11일 의원총회에서 타박을 당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의원들이 혁신안에 강력히 반발했고 나머지 의원들도 침묵으로 이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의원총회에 보고한 9개 안건은 모두가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불거져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러일으키던 사안들로, 당연히 고쳐야 할 과제들이다. 체포동의안은 독재정권으로부터 국회의원 탄압을 막기 위한 제도로, 이제는 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손질해야 한다. 불과 2개월 전에도 새삼 확인됐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된 의원의 방패로 전락한 제도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이 국민 일반의 인식이다.

변칙적 정치자금 통로인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것도 정치부패를 줄이는 데 필수적이다. 정가(定價)만 받도록 하면 되지 왜 전면적으로 금지하느냐고 하겠지만, 그럴 거라면 서점에서 판매하면 되지 왜 굳이 출판기념회를 하느냐고 국민은 되물을 것이다.

9개 안건 중 3건은 국회의원의 세비(歲費)와 관련된 것이다. ‘무노동 무임금’은 노동시장에서 일반적인 원칙이다. 국회의원만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가 공전(空轉)한다고 국회의원이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그 경우 얼마만큼 일한 것으로 계산할지 기술적으로 정하면 될 문제다. 원칙 자체를 거부할 명분은 전혀 없다. 국회의원의 세비를 국회의원 스스로 정하는 것도 국민은 당연히 고쳐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국민은 국회의원의 손에 사실상 맡길 게 아니라, 제3의 기관에 맡기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혁신’에 대한 의원들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혁신안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반대가 거셌다는 점이다. 사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김문수 위원장은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가 혁신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논란을 예상하고 대신 국회윤리특별위원회를 강화하는 것으로 수위를 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남아 있는 산적한 혁신 과제들의 앞날은 어둡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고(故)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성공적인 혁명이 드물다면 성공적인 개혁은 더욱 드물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만큼 개혁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잘못된 부분만을 고치는 개혁은 개혁의 대상이 될 사람들을 통해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개혁에는 고도의 정치적 수완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보수혁신’은 사실상 김 대표의 첫 정치적 작품이다. 첫 혁신안이 의총에서 추인을 받지 못한 것은 개혁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거세다는 증거다. 이제 혁신의 성패는 김 위원장은 물론이고 김 대표의 정치적 수완과 리더십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됐다. 새누리당이 국민의 가슴을 얻고 정치권에도 새 기풍을 북돋우려면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은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문무(김문수-김무성) 합작품’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