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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우리나라에서 KB금융 사태와 같은 금융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금융산업이 다른 제조업처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관치(官治)금융에 있다. 관치금융은 정부가 은행의 소유를 제한하고 금융에 대해 전반적인 규제를 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금융 부문 등록규제가 1107건이나 되고, 창구지도와 같은 유사 행정규제도 534건이라고 한다.

주인이 없는 은행에 수많은 규제를 가하면서 정부는 은행에 대해 사실상 주인 행세를 하며 은행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의 임면을 쥐락펴락한다. 자연히 은행의 임원들이 시장의 변화보다는 힘 있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동향을 살피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금융 스캔들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정부가 은행의 소유를 제한하고 금융에 대해 수많은 규제를 가하는 것은 금융의 공공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은행을 개인에게 맡길 수 없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금융에 대해 간섭하고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의 공공성은 허구다.

금융의 공공성은 애초에 공공(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었다. 그 근원은 1694년 영국의 잉글랜드은행의 인가에 있다. 잉글랜드은행은 설립 때에는 민간 은행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던 영국 정부가 잉글랜드은행에 각종 특혜를 주면서 인가해주는 조건으로 낮은 금리로 정부에 자금을 공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잉글랜드은행의 인가는 각국에서 은행 인가의 기본 모형이 됐고, 그 후로 민간 은행이 정부 기관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인가하면서 정부는 지원하고 보호하는 한편 규제해 왔다.

은행이 더 이상 정부 기관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게 됐지만, 공공 기능을 수행한다는 금융의 공공성 개념이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 제도의 안정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대에 와서 금융 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 아래 정부가 규제를 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시장실패(정보의 비대칭성과 외부성)에 그 바탕을 둔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하며 안정망을 도입한 뒤 오히려 파산 은행이 늘어난 과거 미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규제는 금융기관의 파산을 증가시켜 예금자에게 더 많은 손해를 끼침은 물론, 그 파산 비용을 납세자들에게 전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금융산업에 정보의 비대칭성과 외부성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 정부가 금융에 대해 규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에 국한돼야 한다. 이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의 금융에 대한 규제는 너무 지나치다. 숨통이 막힐 만큼 수많은 규제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금융산업의 선진화는 불가능하다. 관치금융이 지속되는 이런 환경에서는 결코 금융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나올 수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들과 금융 당국자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금융기관을 육성하고 금융산업을 선진화하겠다고 장밋빛 청사진을 남발한다.

오늘날 삼성전자와 현대차(車)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은 소유자가 투자와 개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혼신을 기울여 노력한 기업가정신의 결과다. 실질적인 소유자가 없고 수많은 규제를 바탕으로 관치로 이뤄지는 금융산업에서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금융산업을 정말로 발전시키고 싶으면 먼저 은행에 실질적인 주인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겹겹이 쌓이고 얽혀 있는 수많은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정부가 각종 규제와 감독을 명분으로 개입하는 관치금융을 청산해야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