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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일본연구소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국제 분쟁에 대한 개입 약화로 미국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가는 시점에 이뤄졌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재확인하고 아태지역 국가로서 미국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함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짧은 일정을 쪼개가면서까지 한·일 양국을 방문하며 이루려고 한 중심축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미국의 경제 이익 제고, 한·일 관계 개선이었다.

일본에서는 아베 내각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을 뿐 아니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가 미·일 안보 조약의 적용 범위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일본의 미·일 동맹에 대한 의구심을 덜어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불용(不容) 의지를 확실히하고 연합사를 한·미 정상이 함께 방문함으로써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한 한·미 동맹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또한, 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하는 데 사실상 합의하는 한편, 한국형 미사일방어(KMD) 체제가 미·일 MD 체제와 상호 운용성이 개선되도록 하고, 한·미·일 정보 공유 중요성에 합의함으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지리적·역사적 연유로 중국과 교류를 강화하는 현실을 인정했으며, 통일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비전도 지지했다. 냉전형 봉쇄정책의 부활이 목표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 오바마 대통령은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 일본에서는 국빈방문 당일에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지속됐고 오바마가 도쿄를 떠난 후에야 겨우 유제품 등 당초 제외 품목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태도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TPP 참여에 대한 적극적 독려보다는 이미 체결한 한·미 FTA를 바탕으로 미국 제품에 대한 시장 개방 확대를 주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에 와서 아베 총리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전시라 해도 충격적 성폭행’이라는 강한 수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라는 한국의 주장을 숙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이를 일본을 비난하며 한국편을 들어준 것으로 곡해해선 안된다. 한국에도 과거사에 묶여 있기보다는 미래에 눈을 맞추고 협력에 나설 것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訪韓) 이후 한국은 보다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서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먼저, 미국의 압박을 배경으로 삼아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하고, 이 문제의 전향적인 해결을 발판으로 삼아 한·일 관계를 정상적인 상태로 복원시켜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한·미·일 3국의 북한에 대한 정보 공유 체제 확립 및 북한의 핵(核)·미사일에 대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긴장감 있게 투 트랙으로 동시에 진행시키는 유연한 외교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 및 정상화, 미래 통일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미국, 중국은 물론 일본, 러시아와도 공유할 시점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이해 당사국들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북한의 미래를 개방적으로 만들기 위한 한국형 설계도를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은 TPP 참가에 지나치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TPP 참가의사를 확인하는 바탕 위에서 동아시아에서의 무역 장벽 제거를 위해 중국·일본과 동시다발적 FTA 협상을 적극 진행해 나가는 게 선진 통상국의 진면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