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왼쪽 사진)가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36년이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체조의 양학선(오른쪽)이 자신이 개발한 ‘양학선1’ 기술로 정상에 올랐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무엇이 변화를 이끈 것일까. 한국 스포츠의 질적 비약의 원동력은 1차적으로 든든해진 경제력이다. 백성일 대한체육회 사무차장은 “국가적인 부가 증가되면서 스포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졌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가능해졌다”며 “고가의 장비와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면서 우리 스포츠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메달의 추이는 한국 스포츠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획득한 총 28개의 메달 가운데 펜싱, 사격, 체조, 수영 등 장비·기술 투자, 과학적 지도가 필요한 4개 종목에서 딱 절반인 14개의 메달이 쏟아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투자 비용보다 체력·정신력에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레슬링과 복싱은 메달을 1개씩 획득하는 데 그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선 펜싱, 수영에서 메달이 없었고, ‘맨몸’ 스포츠에 비유할 수 있는 레슬링에서 9개, 복싱에서 4개의 메달이 나왔다.

경제력이 뒷받침되면서 장기간의 잦은 해외 전지훈련과 해외 지도자 ‘고용’을 통한 선진기술 습득 또한 가능해졌다. 김연아의 경우 캐나다에서 훈련을 했고, 그곳에서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코치를 만나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했다. 리듬체조의 손연재는 러시아에서 전지훈련을 해왔고, 골프여왕 박인비는 중학교 1학년이던 2001년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 세계적인 지도자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이상 미국) 등으로부터 일류 기술을 전수받았다.

해외 전지훈련은 이제 ‘스타급’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올해 10월 현재에만 29개 종목에서 64차례에 걸쳐 무려 854명의 국가대표(지도자 등 포함)가 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경기단체 차원의 해외 전지훈련은 따로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흔하다.

스포츠 인프라가 풍족해진 것도 밑거름이 됐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내정된 김종 한양대 교수는 “전국에 골프장이 500개 넘게 있고, 동네마다 수영장이 있다”며 “스포츠 시설에 대한 접근성 향상은 하이테크 스포츠 종목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에 대한 신세대의 취향이 바뀐 것도 영향이 있다. 운동으로 ‘집안을 먹여 살린’ 시절이 가고 ‘내가 좋아서’ ‘멋있어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기술’ 스포츠가 발전했다. 하드웨어는 탄탄해졌다. 소프트웨어에 눈을 돌릴 때다. 하이테크 종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건 분명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김 교수는 “하이테크 종목의 콘텐츠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인적 저변과 과학적 연구를 확대하고, 지도자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꾸준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선진국형 스포츠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호 기자 jh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