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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전엔 인문학이 ‘허영의 학문’이었다면 이제는 우리들의 ‘뼈와 살’로 내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당당하고 솔직한 인문학으로 거듭나야겠지요.”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는 강신주(46·사진) 박사는 “해방 이후 철학 등 서양학문은 자신의 지식이나 교양을 자랑하는 겉치레용으로 많이 포장됐으나 이제 우리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강 박사는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대부분 구성원들의 삶이 극한으로 내몰리다 보니 삶의 문제들을 치유하기 위해 인문학에 눈길이 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 박사는 “문학에서도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가 아니냐”며 “소위 ‘전후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에서 인간성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 역시 평화시대엔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일상의 삶이 전반적으로 위협받을 때 그 소용가치가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IMF사태 이후 한국사회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약육강식의 사회로 추락했다”면서 “신자유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부가 독점되고,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정글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라고 짚었다. 위기가 만연하자 사람들은 점차 상처받은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인문학 붐’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상품화’ 역시 강 박사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자본의 속성상 인문학 역시 상품화되고 있으며 ‘값싼 위안’을 제공하는 것이 마치 인문학의 요체인양 전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요즘의 인문학은 적당한 수준에서의 반성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는 측면도 있다”며 “예컨대 물이 오염됐는데 생수를 제공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강 박사는 강조했다.

그는 “생수를 사서 마시다보면 결국 환경 오염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며 “이처럼 스스로를 반성하는 제스처라도 계속하다 보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자각’의 순간이 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결국 상품으로서의 인문학이 ‘소비’되더라도 어느 순간 인문학 자체가 갖고 있는 힘으로 인해 ‘힐링’의 수준을 뛰어넘는 단계가 온다는 것. ‘인문학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강 박사는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에 입각해 있다”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견해와 느낌을 존중하고 자신의 생각과 견주어봄으로써 ‘타인과 나’의 진지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인문학이 발달하지 않고선 민주주의가 꽃피우지 못한다”며 “산불이 난 자리에서 예쁜 꽃들이 많이 피는 법”이라고 말을 맺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