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은행 직원이 적금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과 상담하고 있다. 기업은행 제공

외환위기 이후 국내 가계는 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에 처해 있다. 소득의 답보·정체 속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이 가계 가처분 소득 증가율의 2배에 달하는 등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합리적 소비, 저축습관을 생활화해 어려운 난관을 돌파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고언이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이 커져 개인연금저축의 필요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 푼 두 푼 저축으로 작지만 보람찬 꿈을 일군 이들에게는 산업화가 한창 이뤄지던 때나 고도성장기, 성장완숙기에도 하나같이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성실, 노력, 근면, 끈기의 정신이다. 여기에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공헌 정신까지 몸에 배어 있다. 분에 넘치는 소비는 언젠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저력도 이 같은 ‘유전자’가 발현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최근 추세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저축을 통해 여유를 가져야만 실천이 가능할 터이다.

1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저축의 날 행사를 통해 훈·포장, 표창 등 저축유공자로 뽑힌 164명의 개인·단체의 면면에서는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저축의 날은 올해로 50회째를 맞는다.

지난해 저축의 날에서 국민포장을 받은 신모(58) 씨. 청과물 상점을 운영하는 신 씨는 2남 1녀의 자녀를 키우면서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과일행상, 노점 옷장사, 건어물 판매 등 안 해본 게 없다. 간난신고의 어려움 속에서도 ‘저축만이 살길’이란 생각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정 소득을 모았다. 오늘의 그는 청과물 상점의 운영자이자, 토목학 박사 아들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어머니이다. 그러면서도 20년 동안 인근 요양원에 매월 후원금을, 10년간은 기도원에 과일을 보내주고 있다.

같은 국민포장을 받은 김모(73) 재활용수집장 대표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목공소, 노점상을 전전했지만 한 푼 두 푼 성실하게 돈을 모아 고물상을 차렸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2∼3일에 한 번씩은 고물 판돈을 인근 마을금고에 꾸준히 저축해 왔다. 지금은 매년 300만∼500만 원씩 기초생활 수급자 자녀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장모(54) 대표는 은행거래 중인 통장만 20여 개, 예금액은 30억 원에 달한다. 수입, 지출흐름을 꼼꼼하고 합리적으로 파악해 최대한 저축을 한 결과 오늘의 부를 축적했다.

앞서 2011년 저축의 날 행사에서 귀감이 된 이들도 저축의 생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여에서 노인전문병원을 운영하는 김모(79) 원장은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월 적금을 적립해 목돈을 마련하고 있다. 소득의 60% 이상은 저축한다는 게 그의 ‘철학’. 자신은 시장에서 싼 옷을 사입지만 아낀 돈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세워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다. 충북 청원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75) 씨는 친환경농산물을 팔고 농업용 비닐, 신문, 빈 상자 등 폐품을 수집한 대금을 차곡차곡 모은 통장만 16개를 갖고 있다. 저축성보험상품과 공제상품에도 가입돼 있어 노후 걱정이 없다. 남모(57) 씨는 1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목돈으로 회사를 차린 후 연 매출 80억 원 수준의 탄탄한 중소기업체를 일궜다.

이처럼 쌓인 일반 국민들의 소중한 저축은 국민경제의 뼈대이자, 동력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 40여 년간 연평균 8%에 달하는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원천은 산업화의 재원인데 그 재원은 국민들의 저축이었다. 저축 없는 과도한 소비는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경제의 발전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는 지적은 이를 뒷받침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뼈저린 교훈을 안은 미국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가계저축률이 최근 다시 회복되는 추세에 있다. 건전한 투자, 합리적 소비, 저축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과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은 “자금잉여 부문인 가계저축률의 하락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투자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뜻한다”면서 “소득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고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통해 저축 여력을 확보해 주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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