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부가 부동산 문제 해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저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한 시민이 휴대전화로 부동산 관련 정보를 비교해 보고 있는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서울 관악구에서 2억 원에 79.2㎡(24평) 아파트 전세를 사는 회사원 이모(40) 씨. 오는 4월 계약 만료를 앞둔 그는 최근 집주인에게서 전세 보증금 5000만 원을 올려주거나 그만큼 월세로 전환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외벌이인 이 씨는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기보다는 월 20만 원씩 월세를 주고 2년을 더 살기로 했다. 월소득 300만 원인 그는 갈수록 늘어나는 두 아이 학원비에 20만 원도 큰 부담이었지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씨에게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집값은 떨어지고 있지만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 사회 진입단계부터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마련하느라 출발부터 부채를 안고 시작한다. 이는 저축 여력이 떨어지면서 자본을 축적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가계의 자산가치를 적정하게 올려야 주택 수요도 늘고 전세가도 안정될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 전세가 급등으로 저축 여력 갈수록 소진= 14일 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63.9%로, 2002년 12월 이후 11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전국 주택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59.3%로, 14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전국 전세가는 48개월 연속 상승했다. 반면 전국 집값은 8개월째 하락했다. 수도권에서는 16개월 연속 떨어졌다. 2월 서울 아파트값은 22개월째 하락세다. 매매가는 하락하고 전세가는 오르는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전월세시장의 전망과 리스크’ 보고서에서 “주택 전세가가 앞으로 2∼4년 이상 계속 올라 수도권의 경우 매매가의 65∼77%까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금융권 전세자금대출 잔액도 급증하고 있다.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 2008년 10조1000억 원에서 2010년 14조9000억 원, 2012년 5월 말 현재 22조5000억 원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거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져 신혼부부 등 사회 초년병들도 빚을 내 아파트 전세를 구하면서 전세대출이 크게 늘어났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젊은 층이 빚을 내 전·월세를 살면서 첫 사회생활부터 부채를 안고 시작하고 있다”며 “저축할 돈은 없는데 주거비용은 상승하고 기본 소비는 늘어나면서 자본축적 기회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 저축률 향상 위한 부동산 문제 ‘해법’ 시급= 삼성경제연구소 분석 결과, 우리나라 가계의 42.8%는 전체 자산 대비 부동산 비중이 80% 이상으로 파악됐다. 빚을 내 집을 구입하면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는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2012년 말 기준 예금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02조3000억 원에 달했다. 문제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2004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전체 국민총소득(GNI)에서 차지하는 가계소득 비중도 낮아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가계 부실이 크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GNI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5년 70.6%에서 2011년 61.6%로 급감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장을 해도 가계소득이 줄어드는데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가계소득은 더욱 감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김충남 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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