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근 커피전문점에서 판매되는 원두커피의 원산지, 영양성분 등의 정보 제공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21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전문점에 로스팅(가열)된 원두가 전시돼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수백 원짜리 캔커피만 해도 원재료 및 함량, 영양성분표시 등이 깨알같이 적혀 있죠. 그런데 가격이 적어도 7배 이상 비싼 커피전문점 커피에는 이 같은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커피전문점 커피를 마시면서도 원산지나 재료, 영양성분 등을 알고 이용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직장인 A 씨)

“커피전문점에 가서 핵심 재료인 원두 원산지나 재료 등을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해주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직원들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구요.”(직장인 B 씨)

“커피는 물 맛도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물을 쓰는지 투명하게 얘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직장인 C 씨)

전국 커피전문점 수는 1만5000여 개에 달하고 연간 시장규모는 4조 원대에 달할 만큼 국내 커피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했으나 유명 커피전문점조차 정작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매우 인색해 소비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화일보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중구·서대문구 일대의 카페베네·스타벅스·커피빈·엔제리너스·탐앤탐스·드롭탑 등 유명 커피전문점 매장 10곳을 확인한 결과 소비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원두 품종과 원산지, 재료 및 함량, 영양성분을 모두 표시하고 있는 곳은 전무했다. 카페베네가 거의 유일하게 영양성분 표시 패널을 계산대 주변에 설치해 놓았을 뿐이었다. 엔제리너스는 매장에 마련은 해놓았으나 소비자들의 눈에 띄는 곳에 비치하지 않아 사실상 방치상태에 가까웠다. 그 외 다른 커피전문점에선 “확인할 길이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매장 직원 대부분은 아예 이 같은 정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왜 묻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법적으로 보면 적어도 열량, 당류, 탄수화물, 단백질, 나트륨 등의 영양성분을 표시하고 고지하게 돼 있으나 이조차 제대로 지키는 곳이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유명 커피전문점을 방문해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하면 언제, 어디에서 재배된 생두를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로스팅(가열)한 원두로 만든 커피인지에 대한 정보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원두와 함께 커피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조차 어떤 물을 쓰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매장은 없었다. 문화일보가 확인한 결과 유명 커피전문점 대부분은 수도꼭지에 정수 필터기를 연결해 정화시킨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에 첨가하는 우유·생크림·초콜릿 등 각종 첨가물의 성분이나 생산지, 유통기한의 경우에는 아예 매장 직원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커피전문점은 카페모카 등에 인공적으로 맛이나 향을 내는 ‘합성첨가물’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조차 공공연하게 관련업계에 돌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매장 직원은 “매장을 찾는 방문객 가운데 원두나 물, 첨가물 등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를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다”면서 “보통 커피를 만들어 주면 그 자리에서 받아나가기 때문에 중요성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커피전문점 업계가 이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해당 업계는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어느 곳에서 생산되고, 어떤 품종의 원두를, 어떤 식으로 로스팅하고,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원산지나 품종을 쉽게 밝히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현재 법 제도적으로 커피 원산지의 경우에는 생두를 볶는 곳을 원산지로 표시하고 있어 대부분 한국이거나 미국으로 표시하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커피 원산지를 로스팅한 장소가 아니라 생산지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소비자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커피 품종이나 생산된 국가를 밝히고 지역이나 블렌딩 함량만 밝히지 않으면 커피 만드는 영업비밀이 외부에 노출될 염려가 없다”면서 “커피전문점 업계가 투명한 정보 공개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톱스타를 내세운 이미지 광고로 신비주의를 조장하고 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노림수”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커피 담당 바이어도 이에 대해 “커피전문점 업계가 커피 값을 비싸게 받는 이유로 블렌딩 노하우를 앞세우고 있어 자세한 정보 제공을 꺼리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알고 마실 권리를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커피전문점 업계가 신비주의를 앞세워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 가격 거품을 조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우리나라가 소위 ‘커피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커피전문점의 수가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사실상 수입에 의존하는 생두의 원산지와 첨가물, 유통기한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며 “커피 매장의 커피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논란도 있는 만큼 커피 소비에 숨겨진 진실을 명쾌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관범·최준영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