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잠깐이나마 모든 걸 다 잊고 한바탕 웃고 싶으신지. 그렇다면 명동예술극장을 찾으시라. 지난 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한꺼번에 두 주인을’은 한마디로, 배꼽 빠지게 웃기는 작품이다.

2시간 40분의 공연 시간 동안 잠깐도 한눈 팔지 않고, 무대에서 벌어지는 익살 가득한 장면들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설 땐 가슴 한편이 훈훈함을 느낄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 원작의 연극은, 시대 배경이 200여 년 전 이탈리아임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각색에 힘입어 오늘날 한국 관객들이 즐기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대사와 장면 곳곳에 요즘의 개그 코드를 삽입,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연극 ‘한꺼번에 두 주인을’은 세계 각국에서 여러 버전으로 각색돼 공연되고 있다. 이번 한국공연은 ‘빌리 엘리어트’로 잘 알려진 작가 리 홀의 각색대본을 채택, 현대 사회에 걸맞은 풍자극으로 만들었다.

특히 오경택 연출은 각색대본에 코미디와 만화, 현실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무대와 등장인물들의 코믹한 대사와 행동, 마치 그림을 오려놓은 듯한 의상은 한 편의 재밌는 만화책을 3D 입체화면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다양한 음악과 노래를 적절하게 가미, 흥을 한층 돋운다. 아코디언, 기타, 퍼커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라이브로 펼치는 음악과 재치있는 안무는 한바탕 축제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인 트루팔디노 역의 백원길은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속사포 같은 대사와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욕심 많으면서도 실수 투성이 하인인 트루팔디노는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꾼이지만 절묘하게 두 주인 사이를 오가며 ‘투 잡’을 해낸다.

백원길은 원작에서 트루팔디노가 표현하는 풍자성을 요즘 코드에 맞게 유행어를 적절하게 구사하며 풀어내고 있다. 남장을 한 여주인공 베아트리체 역을 맡아 열연하는 강지원은 남녀 두 역에 걸맞게 목소리와 몸짓을 순식간에 넘나들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인색하면서도 코믹하기 그지없는 판탈룬 역의 유연수, 여관 주인 브리겔라 역의 유준원 등도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밖에도 아들의 일이라면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서는 여자 의사 롬바르디 역의 임은희, 마마보이 같은 아들 실비오 역의 오용,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늘어놓는 하녀 스메랄디나 역의 황영희, 베아트리체의 애인 플로린도 역의 김병철, 실비오의 약혼녀 클라리스 역의 양영미 등도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능청스럽게 펼친다. 1644-2003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