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영신 한국소비자원 원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청사에서 소비자원 창립 25주년의 의미와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등산화 추천했더니 매출 3.5배 증가’ ‘전기다리미의 판매수익 = 수입원가의 1.3배 논란’ ‘어린이음료 충치, 비만 위험 초래’ ‘네이버 실시간검색어 1위, 서버 마비.’ 최근 생활경제 영역에서 이처럼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로 불리는 K-컨슈머리포트를 발행하는 정부 산하 기관이 있다. 바로 오는 7월1일로 창립 25주년을 맞는 한국소비자원이다. 12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한국소비자원 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영신 원장과의 인터뷰는 이 같은 화제가 첫 화두에 올랐다. “‘K-컨슈머리포트’에 성역이 있다니요?” 김 원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각에서 K-컨슈머리포트가 등산화와 어린이음료, 무선 전기주전자 등 중견·중소기업이나 수입업체 영역만을 다루고 대기업집단의 사업영역을 피하는 것 아닌가 의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전하자 김 원장은 이처럼 되물었다. 김 원장은 “늦어도 올 연말에는 디지털TV 등 대형가전 제품의 품질비교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보통 품질 비교를 하려면 짧게는 3개월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대형 가전제품은 1년까지 준비기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반값 디지털TV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과연 대기업 제품과 반값 중소기업 또는 수입업체 제품 간의 품질 차이는 얼마나 될지 자못 소비자들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 김 원장이 이끄는 소비자원은 또 한 번 논란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 원장은 K-컨슈머리포트 발행 경험을 통해 비교정보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추천 등산화 매출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면서 기업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고 한다. 추천받지 못한 기업은 벤치마킹을 통해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고도 말했다.

김 원장은 ‘소비자 정보의 투명한 유통’이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가져온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K-컨슈머리포트에 대한 기대만큼 부족한 비교대상 제품 수나 대상제품 선택기준 등에 제기되는 의문과 비판도 그는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올 3월에 처음 시작했고, 사람에 비유하면 갓난아이가 첫걸음을 뗀 수준”이라며 “한정된 자원으로 구매빈도가 높은 품목부터 제한적으로 비교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K-컨슈머리포트에 대한 소비자 기대가 큰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성큼성큼 걸을 수 있도록 최대한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각오다.

미국만 해도 컨슈머리포트의 역사는 75년이나 됐고, 28∼29달러를 내는 유료 구독자 수는 700만 명에 이른다. 반면 우리는 이제 막 첫발을 뗀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최소한 3배 이상의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수준으로 미국처럼 유료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소비자가 선뜻 돈을 내고 구독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콘텐츠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얼핏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일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국민들이 성원하고,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국가 예산 배정액도 자연스럽게 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동안 K-컨슈머리포트는 3월21일 등산화, 4월4일 변액연금보험, 5월3일 어린이음료, 5월30일 무선 전기주전자 등의 품질비교 정보를 게재했다. 다음 품질비교 대상은 테이크아웃 커피. 김 원장은 “사업자 등과 조사 전과 후에 간담회를 한다”며 “이 같은 절차를 마치면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이크아웃 커피 시장은 현재 급성장 중이다. 김 원장은 테이크아웃 커피에 대한 품질비교 정보를 제공하는 게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품질비교만큼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또 다른 정보는 가격비교 정보다. 특히 산업과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소비자 정보의 중요성은 매우 커진다.

김 원장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가장 원하는 정보는 첫 번째가 가격, 두 번째가 상품 안전성 문제였다”며 “소비자 정책은 소비자 보호와 교육, 정보제공 등으로 구성되는데 시장이 성숙될수록 가장 우선시되는 게 정보제공”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최근 전기다리미 가격조사를 통해 수입업체들이 수입원가의 1.3배에 달하는 판매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원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도 관세인하만큼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식품, 소형가전제품 등의 가격비교 정보를 조만간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다. 김 원장은 또한 “의류, 화장품, 신발 등도 관심 대상”이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이들 제품도 신속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이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금융소비자 문제’. 금융상품의 경우 가정은 물론 경제까지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자를 하거나 상품에 가입한 시점과 결실을 맺는 시점 사이에 워낙 시차가 큰 데다, 상품 가짓수 자체도 워낙 많아 소비자 보호의 초점은 사전예방보다 사후구제에 맞춰져 있기 마련이다.

그는 “사전예방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입장에서 철저하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제도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금융소비자보호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칠레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데 소비자청에 직원 60명을 투입해 금융소비자보호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며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전문 기관에 인력과 예산을 지원하면 3분의 1 또는 5분의 1 정도로 충분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금융위나 금감원뿐 아니라 소비자원 역시 이 문제와 관련해 협의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 원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최선의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협의를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최근 K-컨슈머리포트의 변액연금보험의 수익률 논란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변액연금보험의 사업비와 수익률은 공개하게 됐다”며 “이번 일로 금융환경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뀔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금융만큼 의료 소비자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원장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 의료나 금융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치료 비중이 급여부문의 절반도 안된다”며 “앞으로 비급여 부분의 정보 제공을 확대하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등 병원 간 진료비 차이가 큰 품목에 대해 비교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1987년 7월1일 출범한 소비자원은 소비자정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선 시기를 시작으로 지난 25년 동안 소비자 주권을 실현하고 관련 법령과 제도를 만드는데 중추 역할을 해 왔다. 공산품뿐 아니라 금융·의료·법률 등 전문 서비스분야로 소비자 보호 영역을 확대하며, 이제는 국제소비자보호집행기구(ICPEN) 의장기관으로 국내 소비자 정책을 전세계에 알리는 등 위상을 높여 왔다. 최근에는 소비자분쟁조정위에 조정부 제도를 도입, 사건 처리기일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김 원장은 “올 1월에는 부산과 광주, 대전 등에 지역본부를 최초로 설치해 전국에서 모두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며 “소비자원은 오로지 소비자의 권익 보호만을 위해 뛰고 또 뛸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