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정돈 쇠락의 길을 가던 부산 중구 광복로는 지난 2007년 간판을 깔끔하게 정비한 뒤 부산의 문화·상업 중심지로 부활했다.

간판이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상업적 메시지를 전달하던 간판이 도시경관의 영역을 넘어 이제는 지역의 정서와 문화, 역사를 담아내는 문화 콘텐츠이자, 소통의 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는 그 거리를 걷는 사람과 소통하며 거리의 느낌과 품격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에서 역사와 전통을 느끼고,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거리에서 파리지엔의 정서를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일보는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산하 한국옥외광고센터와 함께 간판을 통한 도시 경쟁력 확보와 간판문화 선진화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부산 중구 광복로 = 1876년 부산항 개항과 함께 부산 도심의 대표거리로 발전했던 광복로는 시청 등 주요 시설물들이 주변 지역으로 빠져나가면서 수십년째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3년에 걸쳐 진행된 간판 개선 작업을 통해 부산의 대표거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광복로 1㎞ 구간의 450여개 점포의 간판 1323개 중 431개가 철거됐고, 532개는 교체됐다. 2차선 도로는 1차선으로 줄었고, 쌈지공원이 조성됐으며 예술성이 뛰어난 가로벤치와 조형물 등이 설치됐다.

간판 개선 효과는 업소의 매출액 증가와 홍보 효과로 금세 나타났다. 업소 중 20%의 매출액이 늘어났다. 광복로시범가로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우신구(건축학) 부산대 교수는 “간판을 개선하고 나서 광복로의 네임 브랜드가 급상승했다”며 “시민들이 몰려 들기 시작하면서 문화·상업지역으로서의 옛 영광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3.3㎡당 토지가격도 3000만원 정도에서 2∼3배가량 오른 7000만∼1억원으로 뛰었다. 무엇보다 광복로 주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했다. 김익태 광복로문화포럼 위원장은 “간판 개선 사업은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냈다”며 “상점 주인들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광복로 주민과 부산 중구청은 2009년부터 매년 12월 초부터 1월 중순까지 광복로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는 연인원 500만명이 찾을 정도로 부산의 대표적인 축제가 됐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 = 전북 전주에서 차량으로 1시간가량 가야 하는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은 아이울음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던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명소가 됐다. 2007년 전주대와 진안군, 시민단체 등이 이곳의 시골상점 간판을 교체한 뒤부터 일어난 변화다. 원촌마을 간판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1970년대의 시골정서가 그대로 담긴 상점의 간판을 구경하거나 사진에 담기 위해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단체 관람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9년과 2010년 두 해 동안 지자체에서 온 관람객만 2000명이 넘었다.

특히 간판 개선 사업은 마을가꾸기 사업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간판 개선 사업 성공으로 힘을 얻은 마을 주민들은 지역특산물을 판매하는 ‘ㅂ마트’ 사업을 시작했고, 관광객을 위한 농로 자전거길 조성사업을 마쳤다.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과 지역의 역사유적지와 관광지를 연결하는 ‘에코뮤지엄’ 만들기 사업과 농가 레스토랑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착수되거나 검토되고 있다. 또 전통 5일장 복원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간판개선 사업을 주도했던 구자인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팀장은 “간판의 성공은 주민들의 패배감을 씻어내고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며 “2600만원을 투입한 간판 개선 사업이 이렇게 성공할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병권기자, 부산 = 글·사진 김기현기자 ant735@·진안 = 글·사진 박팔령기자 park80@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정감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의 ‘희망건강원’은 정감어린 간판과 조형물을 설치해 눈길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