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0일 대국민연설에서 조기 퇴진을 공식 거부, 이집트를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하야 성명 발표까지 간 상황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막판에 독단적으로 9월까지 버티는 것으로 급선회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오후 현지시간으로 10시45분쯤부터 약 15분간 국영 TV를 통해 생중계로 발표한 대국민연설의 핵심은 오는 9월까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점진적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나의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며 “헌법의 5개 조항은 개정하고, 1개 조항은 삭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개헌 조항은 198조, 76조, 77조, 88조, 93조이며 폐지조항은 179조를 말한다.

179조는 대통령이 테러와 국가안보에 관한 사건을 군사법원에서 처리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9월까지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종전 입장의 재확인에 불과하다.

또 비상계엄령 해제도 당장이 아닌 안보상황을 봐 가면서 해제하겠다는 내용인 데다 헌법 조항의 수정 약속도 새로운 게 아니어서 민심을 달랠 수 있을 만한 유화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나는 외부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뉴욕타임스 등은 “무바라크가 오만하게 국제사회의 개입을 경고하고 나섰다”고 풀이했다. 이는 자신의 조기 퇴진을 압박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에 대한 불쾌감을 무바라크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태는 이집트 국내 문제인만큼 이집트인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보다 나은 이집트의 변화를 요구하는 당신들은 이집트를 상징하는 새로운 세대”라고 말하며 반정부 시위 국면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책임있는 처리를 약속한 것도 밖으로는 개입을 차단하고, 내부적으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련의 발언들은 모두 무바라크 대통령의 조기 퇴진 공식 거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가 분노하고 국제사회에서 실망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메 쇼우크리 미국 주재 이집트 대사는 “술레이만 부통령이 사실상의 대통령”이라며 “무바라크 대통령은 법적인 국가 수반으로만 남게 된다”고 밝혔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