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조기 퇴진을 거부하고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점진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사임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반정부 시위대는 대통령 연설에 격렬히 항의, 대통령궁과 국영방송국을 포위했고 11일에는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이 참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투쟁 강도를 높일 예정이어서 대규모 유혈 충돌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밤 국영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나는 외부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오는 9월까지 평화적인 권력이양 조치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내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며 종전의 불출마 약속을 재확인한 뒤 “헌법의 5개 조항은 개정하고, 1개 조항은 삭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사메 쇼우크리 미국 주재 이집트 대사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부통령에게 이양했다”면서 “술레이만 부통령이 사실상의 대통령이 되며, 무바라크는 법적인 국가수반으로만 남게 된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 성명을 기대했던 반정부 시위대는 즉각 반발했다. 카이로 인근 도시에서는 11일 오전 1시쯤 시위 도중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사망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앞서 이집트 군의 최고위원회는 이날 최고 사령관인 무바라크 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회의를 연 뒤 국영TV에 “국민의 적법한 요구에 대해 지지한다”고 발표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의 압력 속에 퇴임을 결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조기 퇴진 거부와 관련해 이날 긴급 국가안보회의를 소집, 이집트 정부의 변화가 불충분하다고 평가하며 구체적인 정권 이양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