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백승곤 할아버지가 지난 23일 오전 충남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 자신의 집 옆에 아들이 운영하는 가내 공장에서 홍삼 절편을 낱개 포장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금산 = 심만수기자 panfocus@munhwa.com

‘무병장수(無病長壽)’. 현대인들의 꿈이다. 평균 수명이 70대를 넘어 80대에 이르고 있지만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장수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80대 초반의 나이긴 하지만 병원 한번 가본 적 없이 장수를 누리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 지난 23일 찾아간 충남 금산군 부리면 현내리의 백승곤(83)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이다. 백 할아버지는 왕성한 기력을 자랑이나 하듯 이날 오전 자신의 집 옆에 있는 800㎡의 소형 가내 공장에서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운영하는 인삼 가공 공장에서 ‘금산 인삼 캥거루’라는 상표의 홍삼 정과(正果)를 포장하는 일이다. 흰색 모자를 쓰고 자줏빛 외투를 입은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20g짜리 홍삼 절편을 조그만 포장지에 넣은 다음 큰 포장지에 10개씩 포장해 나갔다. 홍삼 절편은 보통 백설탕에 졸여 만드는데 이곳 절편은 인삼을 잘게 썰어 쌀로 만든 조청에 잰 다음 끓여 만드는 게 특징이다. 백 할아버지는 “이 일을 한 지도 이제 몇 달 돼 손에 착착 달라붙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번쩍번쩍 빛나는 금니를 드러냈다.

그는 12시 정각이 되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 아내 정정예(79) 할머니, 아들 안호(50)씨와 함께 식사를 했다.

백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은 부지런함, 규칙적인 운동 및 식습관인 것 같다. 그는 평범한 시골 촌로들과는 달리 농사하고는 별 인연이 없었다. 그 대신 생계를 위해 평생을 장삿일을 하며 부지런히 살아왔다. 5남매(2남3녀)를 먹이고 가르친 것도 그의 부지런함 덕분이다.

지난 1928년 전북 진안군 용담면에서 태어난 백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용담댐 수몰민으로 외갓집이 있는 무주군 부남면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곳에서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한약방에서 ‘도제’로 한약 일을 배웠다. 한약방 총각은 인근 마을에 살던 처녀를 만나 결혼했다. 그 이후 목공일, 어물전 심지어 막걸리 장사까지 안해본 게 없다. 오직 자녀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렇게 일을 했는데도 재우(겨우) 아들들 고등학교까지밖에 못 가르쳤제”라고 했다.

백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6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운동 삼아 집 주변을 한바퀴 돌며 산책하고 나선 아침 식사를 하고 집 인근에 있는 1800㎡ 정도의 인삼 밭에 가 풀도 뽑고 배수로도 내는 등의 작업을 한다. 아직 오전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집에 다시 와서는 막내아들 공장 일을 돕는다. 백 할아버지는 12시 종소리가 울리면 점심을 먹고 오후 1시30분까지 부리면 면사무소에 있는 게이트볼장에 간다. 5시까지 거의 매일 3시간 이상 게이트볼을 친다. 지난 2008년부터 배웠는데 지금은 하루라도 게이트볼을 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장수 비법은 식습관에서 나오는 것 같다. 어떤 것을 잘 드시냐고 묻자 그는 또 금니를 드러내며 “순전히 밥이지. 김치하고 장만 있으면 한 그릇 먹지. 장을 지져 먹으니까. 글구 끄니(끼니)는 세상 없어도 제때 먹으려고 해. 점심은 12시면 먹으려고 하고 아침, 저녁도 제 시간을 넘기면 내가 막 재촉하지”라고 말했다.

인삼 공장을 운영하는 아들 덕에 인삼은 원 없이 먹는다고 한다. 홍삼 추출액은 매일 하루 두 봉지씩 먹고, 절편도 방에 갖다놓고 과자처럼 먹는다. 담배는 전에는 하루 한 갑씩 피웠는데, 지금은 이틀에 한 갑 정도 피운다. 술은 젊었을 때 많이 마셨지만 속이 아파 한 30년 전부터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만의 건강 비법 덕분인지 백 할아버지는 그동안 병원 문턱을 넘나든 적이 거의 없었다. 노안 수술을 한 것 빼고는 몸에 칼을 댄 적이 없다. 백 할아버지 연세의 노인들이 대부분 앓고 있는 허리나 무릎 관절 질환도 없다. 백 할아버지는 “병원 댕기는 것 없고 (몸은) 괜찮아여. 예방주사도 한번도 안맞았어. 독감 주사도 지난해부터 맞기 시작했어. 안해도 무병한 걸 뭐하러 맞아”라고 했다. 아들 안호씨는 “아버지는 식사를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하신다. 잔병을 치른 적도 없고 병원도 안 가신다. 홍삼액을 매일 드셔서 오래 사시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금산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