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물결의 ‘5분간의 청혼’은 몸짓으로 풀어낸 고전에 대한 상징적 압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먼저 하나의 사건으로 전체를 풀어낸 집중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입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진심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아들을 잃고 파리로 떠났다가 가진 돈을 다 쓰고서야 영지인 ‘벚꽃동산’으로 돌아온 라넵스까야는 여전히 현실에 무지합니다. 딸 아냐는 나이 오십에 아직도 대학에 다니는 진보주의 철학자 뜨로피모프와 플라토닉 사랑에 열중입니다. 양딸 바랴와 농노 출신으로 열심히 일해 큰돈을 번 로빠힌 정도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현실주의자인데 이들은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는 무심합니다.

체호프는 시대의 변화에 눈감은 채 그저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등장인물들의 삶을 ‘코미디’로 봤고, 이 작품을 초연, 불멸의 고전반열에 올려놓은 연출자 스타니슬랍스키는 이를 ‘비극’으로 해석했지요.

‘5분간의 청혼’은 로빠힌과 바랴의 사랑에 집중합니다. 라넵스까야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사랑해온 두 사람을 맺어주고 싶어합니다. 라넵스까야에게는 이를 위해 5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1분이면 족하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5분을 흘려보냅니다. 빈둥거리며 당구대를 부러뜨린 에삐호도프에 대해 비난하고, 100년을 넘게 벚꽃동산을 지켜온 탁자이야기만 합니다. 서로의 진심을 전하는 데는 1분도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이야기만 하다가 마지막 5분을 다 써버린 채 바랴는 벚꽃동산의 열쇠를 내던지고, 로빠힌은 벚꽃동산의 벚나무를 도끼로 찍어내고는 각자 원치 않았던 다른 길로 떠나 버립니다.

원작에서 5분도 안 되는 분량을 연출자 송현옥씨는 무의식의 진심을 격렬한 몸짓으로 풀어내 50여분으로 변주했습니다. 강렬한 관능으로 시작해 신경증적인 긴장과 이완, 수줍은 숨바꼭질, 그리고 마지막 슬픈 미뉴에트춤까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진심을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명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의 ‘벚꽃동산’은 희극일까요, 비극일까요. 전체적으로 슬랩스틱 파스(farce·笑劇) 같은 희극구조 속에 수정처럼 맑은 비극의 정조를 담아 놓은 솜씨가 이제 완전히 물결의 색깔로 자리를 잡은 느낌입니다. 구성·연출 송현옥, 안무 이영찬, 출연 나현민 배수진 전혜진. 14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02-3668-0007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